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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51] 전주성 접수했으나 진퇴양난 | Collector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51] 전주성 접수했으나 진퇴양난
오마이뉴스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51] 전주성 접수했으나 진퇴양난

동학군의 전주성 접수에는 많은 부담과 난제가 수반되었다. 정부와 맺은 '전주화약(全州和約)' 그리고 전주성을 관군에 넘겨주고 후퇴, 이런 과정에서 전개된 전봉준과 김개남의 노선 갈등, 향후 청군과 일본군의 조선 내침, 집강소 설치와 농민자치, 우금치 전투의 패배와 일본군과의 전쟁, 전봉준ㆍ김개남 체포와 처형 등으로 동학혁명이 좌절되고, 국제적으로는 청일전쟁의 발발로 이어졌다. 동학혁명군이 전주성을 점령한 것은 갑오년 4월 27일(음)이다. 동학혁명의 1차적 성공이고 최후의 승리였다. 전주성은 호남의 수부임과 동시에 조선왕조의 본관지역이다. 여기에는 이성계의 위패가 모셔져 있었다. 당시 백성들은 동학혁명군의 전주 점령을 조선왕조의 멸망을 예고하는 사변으로 인식하고, 항간에서는 이와 관련한 각종 참언과 소문이 나돌았다. 고종 왕실이 그만큼 중대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동학혁명군은 전주성을 점령했지만, 내부사정과 국내외 정세는 이곳에 오래 머물기도, 퇴거하기도 난감한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갈림길이 되고 말았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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