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2012년 8월 6일 새벽, 입양 절차에 출생 등록을 강제한 개정 입양특례법이 시행된 다음 날이었다. 베이비박스 문이 열렸다. 강보에 싸인 아이가 있었다. 쪽지에는 법 시행에 따른 출생 등록을 할 수 없었다고 적혀 있었다. 거기 함께 써진 이름은 민수(가명)였다. 절차에 따라 경찰과 구청에 동시 신고했다. 구청 보고를 받은 서울시 아동복지센터 아동일시보호소에서 아이를 데려갔다. 아이는 일시보호소에서 3개월 동안 머물 법적 권리가 있었다. 소장 권한으로 한 번 더 연장하면 최장 6개월까지 가능했다. 법에 따르면 그 기간 동안 지자체는 보호자를 찾는 15일간의 공고 기간을 거친 후 성본창설을 법원을 통해 완료한다. 동시에 아동복지심의위원회(현 사례결정위원회)를 열어 아동복리에 가장 적합한 보호조치를 결정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과 헤이그협약에 따르면 해당 아동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결론은 입양이나 위탁 등의 가정형 보호다. 시설보호는 가장 최후의, 어쩔 수 없는 결론이어야 한다. 심지어는 해외 입양까지 고려한 끝의 보호조치가 시설이다. 3개월이면 이 모든 법적·행정적 절차를 마무리하는 데 충분한 기간이다. 하지만 민수가 일시보호소에 머문 기간은 24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민수는 곧바로 장기양육시설로 인계되었다. 해당 시설장은 곧 민수의 법적 후견인이 되었다. 민수에 대한 모든 보호 권한과 권리는 국가에서 민간으로 이첩되었다. 공적 책임은 이로써 간단하게 종결되었다. 민수가 시설에서 사는 동안 국가는 그 아이를 다시 찾지 않았다. 아이의 보호조치가 옳았는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다른 보호조치의 가능성은 없는지 국가는 묻지 않았다. 국가가 한 일은 민수에게 할당된 보조금을 시설장을 통해 입금하는 일이 전부였다. 올해 15살 중학생인 민수는 지금도 시설에 살고 있다. 이 이야기는 민수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이 나라 아동일시보호소의 실제 작동 방식이었다. 제도의 공백이 아이들 삶에 깊은 상흔 1961년 12월, 아동복리법이 제정됐다. 아동일시보호시설이 법정 시설로 처음 명시된 순간이다. 조사하고 판단하는 동안 보호받을 권리가 보장되는 곳. 설계 자체는 옳았다. 그러나 이후 60년 동안 시설 수는 2개에서 18개로 늘었지만 아직도 미설치 지자체가 남아 있고 설계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민수가 베이비박스에 놓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2012년 입양특례법은 입양을 위한 출생 등록을 의무화했다. 신원 노출을 꺼리는 생모들에게 출생 등록은 또 다른 벽이었다. 법 시행 전부터 입양 현장에서는 익명 출산을 보장하는 보호출산법 동시 입법을 요구했다. 당사자의 알권리를 위한 출생 등록을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법의 사각지대를 만들게 분명했다. 유기아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과는 2015년 253명, 베이비박스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 그로부터 12년이 흐른 2024년 7월, 보호출산법이 시행됐다. 그해 유기아동 수는 30명으로 급감했다. 직전년도인 2023년 유기아동 수는 88명이었다. 12년 전 만들어졌어야 할 법이었다. 그 사이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2000명 넘는 아이 중 1500여 명이 민수와 같은 전철을 밟았다. 제도의 공백이 아이들 삶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아동복지법 시행규칙 제26조 제1항은 명확하다. 아동일시보호시설의 보호기간은 3개월 이내로 한다. 시설장이 특별한 사유를 인정할 경우 시장·군수·구청장의 승인을 받아 3개월 범위에서 1회 연장 가능하다. 최장 6개월. 이것이 법이 유기아동에게 약속한 시간이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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