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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날, 가장 어린 시민의 권리를 묻다 | Collector
지구의 날, 가장 어린 시민의 권리를 묻다
오마이뉴스

지구의 날, 가장 어린 시민의 권리를 묻다

22일은 지구의 날이다. 1970년 4월 22일 미국에서 약 2천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와 시작된 이 날은, 정부가 만든 기념일이 아니라 시민이 만든 기념일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56년이 지난 오늘, 한국의 시민들도 작은 실천을 이어 간다. 저녁 8시 전국에서 진행되는 10분 소등 행사에 동참하는 시민도 있을 것이다. 지구의 날을 맞아 함께 짚어야 할 더 무거운 질문이 있다. 한 달 반 뒤면 17개 시·도교육감을 뽑는 6.3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교육감 후보들의 공약집에는 기후위기 대응, 생태전환교육, 탄소중립 학교 같은 의제가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가장 어린 시민들의 자리는 후보들의 공약에서 충분히 보이지 않는다. 지난 30년 한국의 기후·환경 정책에서 영유아는 정책의 중심에 자리잡지 못했다. 기후·환경·생태교육은 추가 교육이 아니다 먼저 짚어야 할 것이 있다. 기후·환경·생태교육은 영유아에게 더해지는 또 하나의 교육 영역이 아니다. 자연과 비인간 존재가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일은 영유아가 세계와 처음 관계 맺는 기본 방식이다. 흙을 만지고 물을 느끼고 바람을 맞으며 자라는 일, 식물과 동물과 사람이 모두 같은 세계의 동료라는 감각을 기르는 일은 영유아의 발달과 권리의 출발점이다. 기후위기는 이 기본을 흔든다. 폭염은 야외 활동을 멈추게 하고, 미세먼지는 호흡을 좁히며, 산불은 숲을 빼앗는다. 영유아가 자연과 관계 맺을 가능성 자체가 줄어드는 것은 단순한 환경 변화가 아니라 권리에 닿는 문제다. 기후·환경·생태교육은 이 권리를 지키는 일이며, 추가 사업이 아니라 영유아 교육과 돌봄의 기본이어야 한다. 다섯 번의 패러다임, 좁았던 영유아의 자리 한국의 환경·기후 정책은 지난 30년간 다섯 번의 큰 흐름을 거쳐 왔다. 1990년대 환경 보전, 2000년대 지속가능발전, 2008년 이후 녹색성장, 2020년 이후 탄소중립과 생태전환, 그리고 최근의 정의로운 전환이다. 이 흐름들 동안 영유아가 정책에 호명된 적은 있다. 환경 보전기에는 보호 대상으로, 지속가능발전기에는 미래세대라는 추상적 호명으로, 탄소중립기에는 학교의 일부로, 정의로운 전환기에는 산업·노동 영역의 부담 분배 논의 안에서 간접적으로 다뤄지는 식이었다. 그러나 영유아를 권리 주체로, 정책 결정의 단위로 본격적으로 다룬 흐름은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유치원은 비중이 낮고, 어린이집은 더 멀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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