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27이었다. 43이다. 머지않아 58이 될 것이다." 숫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 말 없음이 오래 남는다. 그런데 위에 언급된 숫자는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 1990년의 대한민국 중위연령은 스물일곱 살의 사회였다. 사회의 한가운데 서 있는 보통의 나이가 아직 젊었던 시절이다. 그로부터 삼십 년이 지나 우리 사회의 나이는 마흔셋을 넘어섰다. 이제 우리는 불혹을 넘긴 이들이 평균이라는 인식하에 늙어가는 사회의 문턱 앞이 아니라, 이미 그 안에 깊은 발을 들여놓은 셈이다. 앞으로 오는 2050년의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놀랍게도 환갑을 앞둔 쉰여덟 살 안팎의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란 예측이 들어섰다. 그런 대한민국의 추세는 서울도 같은 길을 따라간다. 이 도시는 오래 살아남은 사람들의 시간 위에 놓이게 된다. "도시가 늙는다"는 것은 단순하게 통계표에서 숫자가 바뀌는 일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나이를 먹고, 관계가 늙고, 하루의 리듬이 달라지는 일이다. 다른 분야도 그렇겠지만 무엇보다 문화예술이 응답해야 할 자리 역시 달라진다. 우리는 그동안 문화예술을 너무 오래 젊음의 언어로만 말해온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본다. 새로운 취향, 새로운 실험, 새로운 감각 등. 물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만큼 절실한 다른 질문이 생겼다. "길어진 삶의 후반부를 사람들은 무엇으로 건널 것인가." 퇴직 이후의 긴 오후, 관계가 조금씩 줄어드는 날들, 몸은 예전 같지 않은데 하루는 더 길게 남는 시간을 무엇으로 버티고, 무엇으로 다시 살아낼 것인가. 이래저래 고민해야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늙어가는 사회, 예술의 역할이 달라진다. 고령화 시대를 말할 때 많은 사람은 먼저 복지와 돌봄, 건강과 의료를 떠올린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은 몸만 돌본다고 살아지는 존재인가. 몸보다 먼저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이 있고, 경제적 결핍보다 먼저 관계의 단절이 사람을 지치게 하는 순간을 톡톡히 느낀다. 고독사와 사회적 고립의 위험이 커진다는 것은 단지 1인가구 등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뜻만은 아니다. 자신을 표현할 기회가 줄어들고, 누군가와 정기적으로 만나 말을 섞을 이유가 사라지고, 하루를 견디게 하는 작은 기회 조차가 점점 희미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 문화예술이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달라져야 한다. 나는 잠깐 보고 즐기는 소비적인 콘텐츠를 더 많이 열중하는 것에서 제동을 걸고 싶다. 삶의 공백을 메우고, 스스로를 다시 표현하게 하고, 타인과 다시 연결되게 하는 예술이 대안이 되어야 한다. 잘 몰라도 참여할 수 있고, 잘하지 못해도 머물 수 있는 것. 단순히 관람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시간을 다시 써보게 하는 예술을 말이다. 고령화 시대의 문화예술은 바로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 서울문화재단이 추진하는 대표적인 문화예술교육 사업인 '서울시민예술학교(www.sfac.or.kr/asa)'에서 4월부터 봄 시즌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그것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변화는 더 이상 공식적인 선언에 머물지 않는다. 실제 제시된 프로그램 안에는 50대 이후의 중장년과 시니어, 베이비부머 세대를 집중 타겟으로 한 기획이 분명하게 들어와 있다. 이것은 사회가 늙어가는 속도를 문화예술이 더는 외면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중요한 것은 이 흐름이 단순한 추가 인원을 배정시키는 '배려'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장년과 시니어를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두지 않고, 여전히 표현할 수 있고 창작할 수 있으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적극적인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삶의 후반부란 무엇을 더 움켜쥘 것인가보다 무엇을 조금 내려놓을 것인가를 배우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더 높이 올라가는 일보다 누군가의 길을 조금 넓혀주는 일이 더 중요하게 다가오는 나이다. 책임과 긴장의 한복판에서 한발 물러난 뒤 비로소 자기 삶의 속도를 되찾고, 더 자유로운 마음으로 후배와 동료, 사회를 바라보게 되는 시간. 고령화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문화예술이 놓치지 말아야 할 것도 바로 그 지점이다. 나이 든다는 것은 단지 돌봄의 대상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간을 품어줄 수 있는 깊이를 얻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은 로버트 드니로와 앤 해서웨이가 주연한 <인턴>이라는 영화에서 잘 보지 않았나. 전체 내용보기
Go to News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