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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하듯 날아온 청년의 질문 "왜 저토록 잔혹했나요" | Collector
절규하듯 날아온 청년의 질문
오마이뉴스

절규하듯 날아온 청년의 질문 "왜 저토록 잔혹했나요"

지난 4월 초, 청주의 한 대학교 강의실에서 영화 <1980 사북> 상영회가 열렸다. 50명 남짓한 대학생들이 참여했고, 영화가 끝난 뒤에는 학생들과 감독 사이의 대화가 이어졌다. 상영 후 학생들이 먼저 꺼낸 말은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고백이었다. 저는 역사교육과 3학년인데도 사북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사북이 다른 민주화운동과 같이 규모도 크고 중요한 사건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모르고 있는 현대사의 사건들은 얼마나 더 많을까 하는 생각에 참담함을 느꼈습니다. ('감독과의 대화' 중 A의 발언) 영화를 만든 박봉남 감독은 "당신만 몰랐던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무지의 고백과 참담한 감정, 그것이 이 영화가 가장 먼저 도달한 자리라면, 영화는 이미 제 몫을 다한 셈이다. '사북 사건의 피해자들은 아직도 국가의 사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게 만드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왜 오랫동안 침묵과 망각 속에 머물러 있었는지 묻는 일이다. 피해 당사자들은 회사의 압박과 주변의 냉담한 시선에 결국 사북을 떠나야 했고 20년이 넘도록 사건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2000년대 들어 진상규명의 움직임이 시작되었지만, 그와 함께 이재기 지부장 가족과 사북항쟁동지회 사이의 갈등도 본격화되었다. 피해자들이 침묵하고 서로 갈등 하는 사이 정작 책임을 져야 할 국가와 기업은 뒤로 물러나 있었다. 피해자들의 남은 상처를 읽어내다 학생들은 고문 피해를 증언하는 장면을 강렬하게 기억했다. 피해자들은 고문과 폭력의 기억을 담담하게 꺼내 놓았고, 학생들은 그 말투와 몸짓에서 지금도 남아 있는 상처를 읽어냈다. 어떤 어머니께서 '사진에 찍혔으니까 잡혀갔지'라고 말씀하시고, 물고문을 이야기하시면서 '고문을 좀 쉬었다가 했으면 좋겠는데, 계속하더라'라고 하셨는데요. 억울하게 끌려가신 분들인데 그런 말씀을 너무 담담하게 하셔서 오히려 더 충격적이었어요. ('감독과의 대화' 중 B의 발언) 증언은 영화를 끌어가는 중요한 힘이었다. 학생들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통해 사북을 더 이상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끝나지 않은 상처이자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받아들였다. 이번 영화에서 실제 증언을 영상으로 접하니 전혀 다른 충격이 있었어요. 너무 충격적이어서 중간에 더는 못 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지금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오늘 밤은 잠을 못 잘 것 같습니다. ('감독과의 대화' 중 C의 발언) 일부 학생들은 고문 과정에서 일어난 성적 학대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한 학생은 절규하듯 물었다. "정부와 공권력은 도대체 어떤 목적에서, 왜 저토록 잔혹한 고문을 했나요." 폭력의 최종 책임은 당시 권력을 장악한 보안사령관 전두환에게 있었다. 그러나 그 폭력을 실제 수행한 것은 합동수사단에 파견된 보안대 소속의 군인들이었다. 광부들과 광부의 아내들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보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잔혹함이었다. 사북은 막장 노동의 공간이었고, 피해자들은 산업화를 떠받쳤지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광부였다. 여기에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까지 겹쳤다. 사북 사건은 국가폭력이 누구에게 더 가혹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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