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ctor
보안과 독재 잔재의 결합... 법보다 충성이 먼저인 '괴물'의 탄생 | Collector
보안과 독재 잔재의 결합... 법보다 충성이 먼저인 '괴물'의 탄생
오마이뉴스

보안과 독재 잔재의 결합... 법보다 충성이 먼저인 '괴물'의 탄생

- '대통령경호처, 63년을 말한다_프롤로그①' 에서 이어집니다. 경호처는 충성의 습관을 유지하려고 군사화 모델을 제도화하면서 대통령의 절대 안전 보장과 권력 안정화를 최우선 추구했다. 대통령의 절대 안전 보장을 존재 이유이자 숭고한 사명으로 여기면서 '바람 소리도 놓치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으로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한 경호를 다짐한다. 이를 통해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겠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대통령 곁에서 무한 충성심을 요구받고 있으니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대부분의 선진 국가에서는 경호조직을 대통령과 분리해 놓으면서도 국정 최고책임자의 신체적 위해에 적절하게 대응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경호처는 '대통령의 사병'으로 출발한 창설 초창기의 군사화 모델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설령 당장은 법적 제한이 있다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대통령의 품을 떠날 준비 태세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언젠가 바람 소리만 나면 다시금 군사화 모델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들 가능성이 작지 않다. 1987년에 외면한 민주화를 지금껏 유지한 채 권한의 비대화로 '대통령의 사병'을 현실화하려고 나설 것이라는 말이다. 여전히 경호처에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경호처장을 정점으로 하는 군사화 모델 특유의 비밀유지 전통이 유지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취임과 맞물려 태동한 경호처에는 처음부터 '비공개'라는 철칙을 뼈에 새겼다. 어쩌면 보안의 관점에서 이는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5·16 군사쿠데타의 유물로 창설된 경호처에 대한 외부의 따가운 눈초리가 드리운 상황에서 우리가 아니면 모두가 적이어야만 했기에 조직도, 인사도, 작전도 철저히 감춰야만 했다. 만일 사소한 경호 관련한 정보라도 새나가면 대통령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며 비밀의 유지만이 살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경호처 내부에 드리운 깊은 그림자 그것만이 아니었다. 경호처 내부적으로는 더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전체주의의 어머니 유신체제가 잉태한 불투명한 권력 구조 속에서, 비공개는 단순한 보안이 아니라 쿠데타 세력의 비밀 네트워크를 보호하는 방패막이 구실을 했다. 5·16 군사쿠데타의 동지들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속삭이듯 계획을 세웠고, 외부의 시선을 '테러 위험'으로 둔갑시켜 조직의 블랙박스화를 정당화했다. 이 비밀의 성벽은 1968년 1·21 사태로 청와대 2선까지 뚫리는 치욕을 교훈으로 삼아 더욱 높아졌다. 국민은 경호처의 실체를 알지 못한 채, 대통령을 받들어야만 했다. 그 불투명성은 권력의 신비를 증폭시켜 개인숭배를 정당화하며 권위주의 문화를 뿌리내리게 했다. 경호조직의 친위부대화를 통한 권한 집중은 비밀의 요새를 지휘하는 칼날이었다. 경호처장은 대통령을 최근접 거리에서 보좌하며 정권의 실세로 군림했다. 대통령 경호를 위해 관계 정부 부처들이 참가하는 '대통령경호안전대책위원회'를 소집해 '군기 잡기' 용도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여기에 군과 경찰에 대한 지휘권까지 쥐면서 물 샐 틈 없는 보안망을 유지하기도 했다. 지휘 체계의 일원화는 처장 명령에 복종하고 대통령 보위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맹목적 충성의 기제로 활용되었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통해 경호처는 충성조직으로 면모를 일신할 수 있었다. 한국 정치문화의 맥락에서 경호조직의 실세화, 권한집중은 '상명하복'의 극단적 구현이었다. 5·16 군사쿠데타 참가자들로 포진된 군사 엘리트들은 대통령을 '국가 그 자체'로 동일시하며 권력을 한 점에 모았다. 일체의 분산 통제는 반란 재발의 위험으로 치부됐다. 유신체제의 '하나의 이념, 하나의 지도자'라는 10대 지침이 경호처 내부에서 되살아난 셈이었다. 경호조직의 수장은 소통령이 되었고, 그 권한은 안가 운영부터 정치 감시까지 망라했다. 심지어 대통령의 아침 운동 코스까지 미리 점검해 티끌조차 없도록 하는 '심기경호'가 대세를 이루기도 했다. 그렇게 경호처는 무한 권한을 통해 권력기관으로 자리매김하였다. 1974년 8·15 문세광 저격 미수사건에서 백일하에 드러난 경호 공백조차 권한 집중을 강화하는 명분으로 삼았다. 정치적으로는 권력의 인맥 네트워크를 공고하게 했다. 군사쿠데타 동지가 수장 자리를 물려주었고, 막강한 권한은 대통령 개인에 대한 충성으로 귀결되었다. 이 구조는 1987년 6월항쟁에 따른 민주화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경호조직을 대통령 국정운영 뒷받침 도구로 여겼기 때문이다. 보안을 명분으로 한 권한 강화가 반복되는 정치문화의 비극을 잉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전체 내용보기

Go to News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