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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에서 독하게 일하던 명현지 셰프를 잡아끈 두 글자, '엄마' | Collector
두바이에서 독하게 일하던 명현지 셰프를 잡아끈 두 글자, '엄마'
오마이뉴스

두바이에서 독하게 일하던 명현지 셰프를 잡아끈 두 글자, '엄마'

* 명현지 셰프 인터뷰 1편 에서 이어집니다. "이건 일식인가요? 중식인가요?" 손님 질문에 재료와 요리법 하나하나를 설명했다고 한다. 말 한마디 더 건네기 위해 음식 진열대 곁에 일부러 오래 서 있기도 했다. 명현지 셰프가 2007년 두바이 7성급 호텔 '버즈 알 아랍'에서 근무할 때 이야기다. 당시 수석총괄조리장 에드워드 권은 총 8명의 한국인 셰프를 채용했는데 명 셰프는 유일한 여성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2년여간 한식을 책임졌다. 7일 오후 서울 대치동 한정식집 아선재에서 만난 명 셰프는 "최대한 한식이라는 걸 많은 분께 설명하고 알리고 싶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아직 한식이 해외에선 많이 낯설게 받아들여지던 때였다. 이런 이력과 열정은 훗날 여러 방송 프로그램 출연의 마중물이 되기도 했다. 첫 요리의 기억, 차별에 맞서다 명현지 셰프가 본격적으로 요리의 길로 접어든 건 모친의 영향이 컸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1992년, 모친은 언니와 함께 '한미리'라는 한정식집을 차렸다고 한다. 사업은 꽤 잘 됐다. 10년 뒤인 2002년, 한미리는 한 포털사이트에서 선정한 국가대표 맛집 100곳 중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때까지 명 셰프는 연기자를 꿈꾸던 소녀였다. 그러다 중학생 시절은 미국에서, 고등학생 시절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보내며 자연스럽게 요리를 취미 삼아 주변에 선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생 처음으로 선보인 요리는 다름 아닌 크리스마스 케이크였다. 명 셰프는 "고1 땐가 스스로 재료를 준비하고 완성해 낸 케이크를 친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에 처음으로 뿌듯함을 느꼈다"고 기억했다. "그때부터 타르트와 피자, 남아공식 음식 등을 만들며 재미를 느꼈다. 여러 유명한 셰프들이 쓴 책을 보고, 혼자 재료를 사서 공부하곤 했다. 제가 환경이 자주 바뀌고 영어도 서툴러서 놀림도 받았고, 선생님들에게 차별을 겪기도 했었다. 제 인사만 안 받아주더라. 남아공에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였는데 인종차별이 한창 심했거든. 근데 요리할 때만큼은 즐거워지더라." 실제로 대학 졸업 직전까지 연기 학원에 다니며 기획사 면접을 보기도 했고, 아나운서 시험도 준비했다고 한다. "당시 기획사 관계자분이 제게 살쪘다며 독설을 하셨는데 그게 상처였다"며 명 셰프는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채 진로를 고민하다가, 가장 즐겁게 오래 붙들고 있던 일이 결국 요리였다는 생각이 들어 진지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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