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민주화 열기가 가득하던 1987년, 나는 국민학교 6학년이었다. 민주화의 영향으로 아버지는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그 대가로 해고되었다. 해고는 여섯 달이나 이어졌고, 그 시간 동안 우리집은 무너졌다. 중학교에 입학하려면 등록금을 내야 했던 시절, 돈이 없으면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아버지가 해고되었다는 소문이 퍼진 동네에서 어머니는 나의 등록금을 빌리기 위해 애를 썼다. 납부 기한 마지막 날 해질녘이 되어서야 마련된 등록금을 내기 위해 걸어서 30분 거리의 학교로 내달렸다. 내가 가려던 중학교는 학교에 직접 등록금을 내야 했기 때문에... 달리는 동안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다리는 점점 무거워졌지만 멈출 수 없었다. 혹시라도 늦을까 봐, 혹시라도 돌아가야 할까 봐 두려웠다. 그 길은 단순히 학교로 가는 길이 아니라, 내가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여부를 가르는 길처럼 느껴졌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달려 도착한 학교, 담당자는 이미 퇴근 준비가 끝나 있었다. 숨도 고르지 못한 채 등록을 마친 나는 그렇게 겨우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 시절, 아버지는 왜 해고당해야 했는가 돌아보면, 달리면서 나는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왜 아버지가 해고당해야 했는지, 왜 그 일 때문에 내가 학교에 가지 못해야 하는지. 거창한 사회적 의식 때문이 아니라, 그저 너무도 부당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조금만 늦었다면, 달리는 동안 한순간이라도 쉬었다면 나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입학한 중학교에서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교사를 담임으로 만났다. 아마도 오월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그는 수업이 끝난 후 반 전체를 남게 했고 칠판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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