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다소 늦은 감이 있었으나 북접이 남접 중심의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은 천군만마를 만난 격이었다. 최시형은 각포 두령들에게 9월 18일 보은의 청산(靑山)으로 모이라는 동원령을 내렸다. 그리고 <초유문(招諭文)>을 발령했다. 초 유 문 주역에 이르기를 대재(大哉)라 건원(乾元)이여, 만물이 자시(資始)하고 지재(至哉)라 건원(乾元)이여, 만물이 자생이라 하니 사람이 그 사이에 만물의 영이 된지라. 부모는 낳고 스승은 가르치고 임금은 기르나니 그 은혜를 갚는데 있어 생삼사일(生三四日)의 도(道)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하면 어찌 사람이라고 이를 수 있겠는가. 선사(先師)께서 지나간 경신년(庚申年) 천명(天命)을 받아 도를 창명하여 이미 퇴폐한 강상(綱常)을 밝히고 장차 도탄에 빠진 생령(生靈)을 구하고자 하더니 도리어 위학(僞學)이라는 지목을 받아 조난순도(遭難殉道) 하였으니 아직도 원통함을 씻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31년이라. 다행히도 한울이 이 도를 망(亡)케 하지 아니하여 서로 심법(心法)을 전하여 전국을 통한 교도가 몇 10만인지 알 수 없으되 사은(四恩)을 갚을 생각은 없고 오로지 육적(六賊)의 욕을 일삼으며 척화를 빙자하여 도리어 창궐을 일으키니 어찌 한심하지 않으리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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