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이 대사가 관객들의 가슴에 콱, 박혔던 영화가 있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많은 관객에게 이 영화는 다양한 관계들, 습관들, 기억들과 헤어질 결심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공적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 4악장을 널리 알려줬다는 점이다. 그 영화 이후에 라디오에서는 전보다 더 자주 이 곡이 흘러나온다. 내가 처음 들었던 것은 언제였을까? 이십 대였을 것이다. 그 무렵 나는 예술 전용 극장에서 상영하는 예술 영화를 즐겨 보곤 했다. 종로2가에 있던 코아아트홀, 동숭동에 있던 동숭아트센터, 지금은 사라진 극장들. 나는 몇 명의 낯선 이들과 그 넓은 관객석을 안방처럼 차지하곤 했다. 영화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의문이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이십 대의 가진 것 없는 청춘에게는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도피할 곳이 필요했으니까.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 (이탈리아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가 1971년 제작)도 그렇게 보았다. 첫 장면의 탁한 바닷물과 그 위를 미끄러지는 곤돌라가 선명히 떠오른다. 거기 앉아 있던 주인공 아셴바흐의 불안한 눈빛도. 곤돌라가 베니스 남동쪽에 있는 섬, 리도에 가까이 다가갈 때 물살이 갈라지며 음악이 흐른다. 아다지에토로 나지막하게 울리는 현의 소리가. 바이올린과 첼로 같은 현악기의 낮은 물결 소리 위에 퉁, 퉁, 곤돌라에 물이 튕기는 소리처럼 들렸던 하프 소리. 말러 음악에 대한 나의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 사랑은 영화 첫 장면의 느린 호흡처럼 천천히 이루어졌던 사랑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에게도 말러를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시절이 있었다. 말러의 음악이 내게 다가온 순간 대학 졸업과 함께 교사로 발령을 받아 중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이었다.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 멀리 지방에서 한 음악 선생님이 전근을 왔다. 걸음걸이도 사뿐사뿐, 곁에 서 있으면 숨소리도 다른 것 같은, 온몸에서 음악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여선생님. 어떤 일로 가까워지게 되어 방과 후에 그녀와 함께 인근 대학가에 있는 음악다방에 가는 것이 한동안 낙이 되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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