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오늘 아침도 나는 휠체어 바퀴를 굴려 교실로 향한다. 교실 문을 열면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나를 반기지만, 그 뒤편에 선 학부모들의 시선은 종종 복잡한 빛을 띤다.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학교는 안온한 울타리인 동시에,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보내야 할 거친 세상으로 나가는 마지막 정거장이기도 하다. 어느 날 한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내 손을 잡으며 물었다. "선생님, 욕심일지 모르겠지만 우리 아이도 선생님처럼 어엿한 직장인이 될 수 있을까요? 그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존재로 남을까 봐 밤잠을 설칩니다." 그 간절한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목구멍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나 역시 14살의 가을, 예고 없이 찾아온 사고로 인생의 장르가 바뀌었을 때 부모님의 얼굴에서 보았던 그 시린 눈빛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특수교육 현장에서 내가 가르치는 이 아이들의 종착역은 과연 당당한 일터일까, 아니면 여전히 세상과 격리된 안온한 보호구역일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종종 거대한 보호소 안의 존재처럼 다뤄진다. 국가는 복지 예산을 늘려 지원금을 지급하고, 기업은 고용 부담금을 납부하는 것으로 사회적 책임을 갈음한다. 그렇게 장애인은 태어날 때부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보호받아야 할 수혜자라는 이름 안에 갇히고 만다. 이러한 현실 뒤에는 차가운 경제 논리가 숨어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의 조사 결과는 우리 사회가 장애인의 노동을 바라보는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다. 기업이 장애인을 고용할 때 시설 투자와 생산성 손실 등을 포함해 발생하는 1인당 추가 비용은 월평균 123만 7천 원 수준이다. 반면, 법적 의무 고용률을 지키지 않았을 때 내는 부담금은 월 125만 8천 원이다. 단돈 2만 1천 원의 차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편의시설을 설치하고 직무를 재배치하는 행정적 번거로움을 고려하면, 차라리 2만 원을 더 내고 미고용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판단이 되는 구조다. 누군가에게는 이 부담금이 고용 유도를 위한 채찍이 아니라, 장애인 없는 사무실을 유지하기 위해 지불하는 면죄부 구매권이 되어버린 셈이다. 실제로 10년 연속 장애인 고용을 외면한 기업이 수십 곳에 달한다는 사실은 이 제도가 얼마나 무력한지를 증명한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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