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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성대 골목을 좋아했다. 인헌시장에서 식재료를 사고, 채광 좋은 집 창문으로 멀리 산을 바라보던 일상이 4년간 쌓였다. 그런데 이사를 나가려고 준비하던 중, 집주인이 말도 없이 집 앞에 찾아왔다. "그냥 사시면 안 돼요?" 등기부를 뜯어보니 집에 압류가 걸려 있었다. 전세금 반환 보증 보험을 통해 보증금을 돌려받았지만, 지금도 그 동네에 가면 심장이 조여 온다. -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강남구 도곡동에 살고 있는 청년 최민정(가명)입니다. 재작년 낙성대역 근처 살던 집에서 보증금 미반환 사건을 겪고 이사를 했어요. 그 경험을 계기로 전세사기 피해자의 주거 공간 감각 변화에 관해 연구했고, 현재는 대학원에서 박사를 수료하고 졸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낙성대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으셨나요? 그 동네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2020년 대학원 박사 과정에 진학하면서 이사를 오게 됐어요. 학교가 위치한 관악구에서 청년 여성이 1인 가구로서 살기 괜찮은 집 선택지가 많지 않았거든요. 봉천, 서울대입구, 낙성대를 둘러봤는데, 상대적으로 낙성대의 동네 분위기가 안전하다고 느꼈어요. 안전한 느낌을 주는 동네에 살기 위해 주거비에 돈을 많이 쓰게 됐죠. 카드키가 있어야만 상가층에서 주거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신축 오피스텔을 선택했어요. CCTV도 많이 설치돼 있고, 관리실 상주 직원도 있기 때문에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집에 들어가고 나서는 정말 좋았어요. 깨끗하고 시설도 좋은 데다 햇빛도 잘 들어서, 친구들도 자주 초대해 즐겁게 지냈어요. 그리고 집 주변 인헌시장과 골목에서 열리는 축제를 보면서 더 동네를 좋아하게 됐던 것 같아요. 인헌시장은 지금도 좋아해요. 이사 나온 지 좀 됐지만 아직도 가끔 가거든요. 그런데 보증금 미반환을 경험하고 나서부터 이 동네가 나한테 뭐지, 이 집이 나한테 뭐지, 이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 집 자체는 좋았어도, 세입자로 살면서 불편하거나 힘들었던 순간은 없었나요? "이 집에서 계속 사는 것을 힘들게 한 가장 큰 요인은 임차 계약을 한 부동산의 공인중개사였습니다. 공인중개사가 임대인을 대신해서 임차인과 직접 소통하며 집 관리를 했는데, 하자가 생겨도 수리비를 세입자에게 떠넘기려 했어요. 존재하지도 않는 판례를 들먹이며 10만 원 미만의 수리비는 임차인이 내야 한다고도 했어요. 동네 특성 상 학생 임차인이 많은 곳인데 부동산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학생들을 상대로 자꾸 가르치려 들고 조종하려 하는 거예요. 또 2년 거주하고 재계약하러 부동산에 갔을 때 임대인이 바뀌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세입자한테 아무 고지도 없이, 재계약을 할 때 돼서야 집주인이 바뀐 걸 알게 된다는 게 참 당혹스러웠어요. 공인중개사가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중개하는 사람이 아닌, 임대인 편에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됐죠. 그 태도를 보면서 세입자로서 내가 취약한 입장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 보증금 미반환 문제를 어떤 경로로 인지하게 되었나요? "그렇게 공인중개사에 대한 불신이 쌓이다 보니, 그 집에 산 지 4년 차가 되어 재계약해야 하는 시점이 왔을 때 도저히 이 부동산을 통해서는 못 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임대인에게 연락해서 부동산을 바꿔 달라고 했는데, 거절당했습니다. 결국 계약만료 3개월 전에 재계약 의사가 없다고 전달하고, 다른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임대인이 말도 없이 집 앞에 불쑥 찾아왔어요. 어느 날 학교에서 집에 돌아와 주차하려고 할 때 관리사무소 아저씨가 제 차 창문을 두드리면서 집주인이 왔으니 만나라고 하는데 너무 무서운 거예요. 임대인이 저를 보고 한참 있다가 말을 떼는데 첫 마디가 "그냥 사시면 안 돼요?"였어요. 자기가 지금 전세 보증금을 마련할 여유가 안 될 것 같다는 거예요. 나중에 등기부를 뜯어보고 나서야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임대인이 세금을 안 내서 집에 압류가 걸린 상태였어요. 새 세입자를 구하려면 압류부터 해결해야 하는데, 그럴 돈이 없으니 제 보증금도 돌려줄 수 없는 상황이었던 거죠. 상황을 파악하려고 검색해서 나오는 주택 관련 상담 창구에 다 전화해 봤어요. 상담 창구가 적은 것도 힘들었는데, 그마저도 상담을 위한 전담 공무원이 없는 것 같았고 저마다 말이 달랐어요. 공통으로 돌아오는 말은 일단 제 상황은 전세사기가 아니라는 것이었어요. 전세 보증금 반환 보험을 들어놨으니까, 임대인의 기망 의도가 아직 입증되지 않았으니까. '전세사기가 아닌 이 상황에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는데 뭘 할 수 있나요?'했더니 보증 보험을 통해 돌려받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대요." - 보증 보험사는 뭐라고 하던가요? "보증 보험 건으로 연락한 한국주택금융공사(HF)와의 소통에서도 힘든 점이 있었어요. HF는 돈을 확실하게 줄 수 있다고 얘기할 수 없었거든요. 제가 HF로부터 보증금 지급 결정을 받은 때에, 임대인이 제 임차권 등기 무효 소송을 걸겠다고 HF에 통보했대요. 저한테는 얘기도 안 하고요. 그 당시 HF는 이런 분쟁 경험이 별로 없었는데, 소송이 걸리면 임차권이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보증금을 반환해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임차권 등기를 지키기 위해서는 소송이 걸리기 전에 조용히 그 집에서 이사나와야 했고, 일주일도 채 준비하지 못하고 급하게 짐을 싸 우선 본가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결국 HF를 통해 보증금을 돌려받았지만,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피가 마르는 시간을 반 년 정도 보냈어요. 임대인이 HF에게 보증금을 갚지 않아서 아직도 제 임차권 등기는 살아있고요."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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