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전주화약'으로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에서 철수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일본군은 5월 13일 일본육군소장 오시마 요시마사가 보병 3,000명과 기병 300명을 이끌고 인천에 상륙하고, 5월 23일에는 일본공사가 광무황제에게 내정개혁을 요구하고 나섰다. 무력을 배경으로 한국의 내정간섭을 하기 시작한 일본은 6월 21일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입하는 갑오변란을 일으키고, 6월 23일에는 일본군함이 풍도 앞바다에서 청국군함을 격침시킴으로써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사건은 조선의 조야는 물론 전봉준에게도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전봉준이 우려하던 사태가 드디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전봉준은 전라감사 김학진의 요청에 따라 국난을 타개하고 국가에 보답하겠다는 생각으로 전주성을 방문하여 다시 회담을 가졌다. 김학진과 제2차 회담인 셈이다. 이 회담에서 '관민상화지책'이 다시 논의되고 집강소의 기능을 강화하는 데 합의하였다. 집강소의 기능을 강화시킴으로써 어지러운 치안을 유지하고, 농민군 중에서 벌어지고 있는 패악을 징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동학농민군으로서는 이를 통해 자신들의 폐정개혁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자 한 것이다. 전봉준은 7월 6일부터 8일까지 전주 읍양정에 머물면서 김학진과 더불어 국난극복과 치안확보를 위해 집강소의 기능을 강화하는 문제를 논의하였다. 이에 따라 전봉준은 '좌우도(左右道) 도집강(都執綱)'의 명의로 합의된 명령을 하달하였다. 다음은 무주집강소에 보낸 공문이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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