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다 보면, 뭔가 허전하고 설명하기 난감할 때가 있다. '사건'만 있고, 주동한 '사람'이 없는 경우다. 대개는 특정 사건과 인물이 바늘과 실처럼 따라오기 마련이지만, 교과서엔 주동 인물 없이 사건의 이름만 외따로 등장하는 경우가 여럿 존재한다. 예컨대, 동학농민운동 하면 대번 전봉준 장군을 떠올리고, 3.1운동 하면 유관순 열사의 이름이 맨 앞이다. 봉오동 전투라고 하면 홍범도 장군이고, 청산리 대첩은 김좌진 장군을 거의 본능적으로 들먹인다. 일당백으로 홀로 싸운 게 아닌데도 주동자는 사실상 사건과 동일시된다. 대표적인 게 6.10 만세운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이다. 이 둘은 1920년대를 대표하는 항일운동으로, 교과서에 단원 하나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다. 쇠락해 가던 항일운동의 불씨를 되살린 변곡점으로, 특히 광주학생독립운동은 3.1운동 이후 최대의 민족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역사 교사들조차 두 사건의 주동자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그저 학생들이 주도했다는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수능에서도 약방의 감초처럼 출제되는 내용이지만, 인물에 대해선 일절 묻지 않는다. 둘을 각각 민족유일당 운동과 신간회의 역할을 관련지을 따름이다. 잊히고 지워진 그들의 이름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그 이유는 주동자들이 대부분 사회주의자이기 때문이다. 분단의 모순 속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친 인물이라도 사회주의자라면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질 못했던 거다. 반세기가 넘는 동안 독재정권이 지속되면서 그들의 이름은 잊히고 지워졌다. 김일성의 북한 정권에 협력한 이들은 말할 것 없고, 해방을 보지 못하고 순국한 이들까지도 이름을 드러내지 못했다. 심지어 이미 세상을 뜬 그들에게까지 6.25 전쟁과 분단의 책임을 들씌웠다. 불과 이태 전까지도 홍범도 장군조차 '빨갱이'로 치도곤당하는 시절 아니었나. 굳이 구분하자면, 6.10 만세운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운동이었다. 학생이라는 두루뭉술한 이름을 앞세워 사회주의의 공과 역할을 애써 감출 필요는 없다. 교과서에서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바퀴로 전개됐다고 명토 박았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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