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20세기 들어서면서 유럽과 미국에서 나타난 기계 문명의 눈부신 발전이 장밋빛 미래를 충족시켜 준 것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과학기술에 기반한 기계의 발달이 끔찍한 그림자를 드리운 일이 발생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기계는 곧바로 인간을 대량으로 살상하는 최첨단 무기로 변신했다. 이전의 전쟁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끊임없이 불을 뿜는 기관총이 유럽 전역에서 사용되며 하루에도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괴물이 되었다. 탱크와 장갑차가 전쟁터를 누비면서 일반 병사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무엇보다도 전투용으로 발전한 항공기를 이용한 공격은 전쟁의 성격을 바꿔버렸다. 상대방 대도시를 목표로 한 전투기 폭격은 이제 누가 상대방 도시를 더 빨리 파괴하고 민간인을 더 많이 죽이느냐에 의해 승부가 결정되는 상황이 되었다. 더군다나 기계를 통한 산업 발전이 인류 모두에게 풍요로운 미래를 선사하리라는 믿음도 크게 흔들렸다. 분명히 경제의 외적인 규모는 크게 성장했지만, 사회적으로 빈부격차의 골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면서 고통도 증가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인간과 기계의 친밀한 관계에 대한 옹호만이 아니라, 회의와 비판적인 시각도 터져 나왔다. 기계는 부모 없이 태어난 인간? 프랑스 화가 프랜시스 피카비아(1879~1953)의 <어머니 없이 태어난 소녀>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사라지는 현실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제일 먼저 그림과 제목 사이에 아무런 관련이 없지 않냐는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쇠로 만든 바퀴와 이를 돌리는 축, 그리고 균형을 잡아주는 추까지 온통 기계 부품으로 가득하다. 하나로 연결된 모습으로 봐서 철도나 자동차와 같은 기계적 이동 수단의 일부 기관을 묘사한 그림이다. 게다가 화가가 실제로 자기가 본 모습을 그렸다고 보기도 어렵다. 기계 도면 위에 금색 배경으로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덮고, 동력이 전달되는 기관에만 검은색과 녹색으로 칠해 두드러지게 보이도록 했다. 축이 앞뒤로 움직이면 바퀴가 돌게 되어 있는 기계장치라는 점에서, 또한 제목에 임신에 관한 표현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다분히 성행위를 연상하도록 의도했던 듯하다. 상대가 있는 행위는 아니다. 어머니 없이 태어났다는 말은 기독교에서 예수가 아버지 없이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었다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기계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아예 어머니 없이 태어났다는 점에서 더 기적에 해당하고, 그만큼 인간 사회를 그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는 대단한 '사건'임을 나타내려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즉 기계 문명의 탄생을 이전 인류의 경험과 정신적 전통에서 분리된, 완전히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현상으로 보았던 듯하다. 기계 문명을 찬양한 미래주의와는 다른 방향에서의 묘사다. 1913년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 엄청난 기계 기술의 발전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한두 해 걸쳐 미래주의에 일정한 영향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은 그에게 상당한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피카비아는 전쟁을 피해 1915년에 뉴욕으로 건너왔다. 그 후 '다다' 운동에 참여했고, 1916년에는 다다 잡지 <391>을 창간했다. 다다주의는 기계 문명이 만들어낸 새로운 살상 무기가 총동원되어 대규모 참상을 초래한 세계대전에 환멸을 느끼고, 기존 과학기술 문명에서 벗어나 비합리성과 우연성을 추구한 새로운 예술 운동이었다. 예술 형식에서도 전통적인 기법을 파괴하고 사진을 오려 붙이거나 색칠을 첨가하는 콜라주나 포토몽타주 등의 파격적 형식을 시도했다. 인간의 기계 의존에 대한 혐오 피카비아가 다다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것은 기계에의 의존과 찬양에 비판적인 관점을 시각적으로 표현했음을 알게 해준다. 그가 어떤 식으로 인간의 기계화와 기계의 인간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표현했는지를 살펴보자. 피카비아가 주도하여 개최한 다다 전시회를 알리기 위해 제작한 포스터 <다다 4-5>에는 자신의 작품 <알람시계>를 이용했다. 시계에 쓰이는 작은 톱니바퀴와 나사들을 기호화하여 표현했다. 직선과 반원형의 곡선이 교차하는데, 사람들의 일상을 나타내는 이미지로 보인다.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는 제목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알람시계는 단지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에 머물지 않는다. 언제 잠에서 깨어 일어나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기계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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