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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잊지 않겠습니다" 21살의 메모는 <br> 31살의 공약이 됐다 | Collector 31살의 공약이 됐다"> 는 지난 28일 퇴근길 인사 유세를 위해 강남역 11번 출구로 향하는 그의 발길을 따라갔다. '높은 사람' 어딨냐고요? 그게 전데요 오후 4시, 노 후보가 국회 지리를 꿰뚫은 듯 익숙하게 지름길을 찾았다. 방금 전까지 당 대변인으로서 논평 내용을 고민하고 있었다던 그는 현재 당 최고위원, 서울시당위원장, 이번 지방선거 후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치인 노서영'의 길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유세 팀장을 맡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노 후보에게 "소통할 수 있는 높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자신이 팀장이라고 소개해도 사람들은 후보자를 직접 찾아 말을 건네고는 했다. 그는 "유세 현장에서 늘 낯선 존재처럼 여겨졌다"며 "그럴수록 내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더 발로 뛰고, 더 설득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돌아봤다. 난관을 패배의 경험으로 삼지 않는 건 노 후보의 오랜 지침이다. 2015년, 처음 대학에 입학해 마주했던 세상 앞에서도 그랬다. 대학교 1학년, 언론인을 꿈꿨던 그는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광화문광장으로 향했다. 노 후보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물대포와 최루액을 맞는 무고한 시민들이었다. 그는 경찰 차벽 아래를 기어 유가족을 찾아다녔다. 가까스로 현장을 촬영해 여러 언론사에 제보했지만, 뉴스 한 줄로도 이어지지 못했다. 전체 내용보기"> 31살의 공약이 됐다"> 는 지난 28일 퇴근길 인사 유세를 위해 강남역 11번 출구로 향하는 그의 발길을 따라갔다. '높은 사람' 어딨냐고요? 그게 전데요 오후 4시, 노 후보가 국회 지리를 꿰뚫은 듯 익숙하게 지름길을 찾았다. 방금 전까지 당 대변인으로서 논평 내용을 고민하고 있었다던 그는 현재 당 최고위원, 서울시당위원장, 이번 지방선거 후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치인 노서영'의 길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유세 팀장을 맡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노 후보에게 "소통할 수 있는 높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자신이 팀장이라고 소개해도 사람들은 후보자를 직접 찾아 말을 건네고는 했다. 그는 "유세 현장에서 늘 낯선 존재처럼 여겨졌다"며 "그럴수록 내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더 발로 뛰고, 더 설득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돌아봤다. 난관을 패배의 경험으로 삼지 않는 건 노 후보의 오랜 지침이다. 2015년, 처음 대학에 입학해 마주했던 세상 앞에서도 그랬다. 대학교 1학년, 언론인을 꿈꿨던 그는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광화문광장으로 향했다. 노 후보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물대포와 최루액을 맞는 무고한 시민들이었다. 그는 경찰 차벽 아래를 기어 유가족을 찾아다녔다. 가까스로 현장을 촬영해 여러 언론사에 제보했지만, 뉴스 한 줄로도 이어지지 못했다. 전체 내용보기"> 31살의 공약이 됐다"> 는 지난 28일 퇴근길 인사 유세를 위해 강남역 11번 출구로 향하는 그의 발길을 따라갔다. '높은 사람' 어딨냐고요? 그게 전데요 오후 4시, 노 후보가 국회 지리를 꿰뚫은 듯 익숙하게 지름길을 찾았다. 방금 전까지 당 대변인으로서 논평 내용을 고민하고 있었다던 그는 현재 당 최고위원, 서울시당위원장, 이번 지방선거 후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치인 노서영'의 길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유세 팀장을 맡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노 후보에게 "소통할 수 있는 높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자신이 팀장이라고 소개해도 사람들은 후보자를 직접 찾아 말을 건네고는 했다. 그는 "유세 현장에서 늘 낯선 존재처럼 여겨졌다"며 "그럴수록 내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더 발로 뛰고, 더 설득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돌아봤다. 난관을 패배의 경험으로 삼지 않는 건 노 후보의 오랜 지침이다. 2015년, 처음 대학에 입학해 마주했던 세상 앞에서도 그랬다. 대학교 1학년, 언론인을 꿈꿨던 그는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광화문광장으로 향했다. 노 후보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물대포와 최루액을 맞는 무고한 시민들이었다. 그는 경찰 차벽 아래를 기어 유가족을 찾아다녔다. 가까스로 현장을 촬영해 여러 언론사에 제보했지만, 뉴스 한 줄로도 이어지지 못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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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강남역 잊지 않겠습니다" 21살의 메모는
31살의 공약이 됐다

"그때 현장에 메모를 남겼거든요. 강남역을 잊지 않겠다고요. 저는 그렇게 약속한 사람입니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 '당신을 지키겠다'는 공약으로 자라는 데 10년이 걸렸다. 노서영(31) 기본소득당 서울시의원 비례대표 후보는 자신을 '세월호·강남역·이태원 세대'라 말한다. 그는 세월호 1주기 때 광화문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며 활동가로 방향을 틀었다. 이후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을 겪으며 여성 의제에 관심을 갖게 돼 범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 '유니브페미'를 창립했다. 정치에는 기본소득당 창당 멤버로 첫 발을 디뎠다. 노 후보는 사회적 참사를 목격할 때마다 같은 결심을 되새겼다. 참사를 잊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 그렇게 10년, 대학생 노서영은 정치인 노서영이 됐고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은 어느덧 10주기를 앞뒀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8일 퇴근길 인사 유세를 위해 강남역 11번 출구로 향하는 그의 발길을 따라갔다. '높은 사람' 어딨냐고요? 그게 전데요 오후 4시, 노 후보가 국회 지리를 꿰뚫은 듯 익숙하게 지름길을 찾았다. 방금 전까지 당 대변인으로서 논평 내용을 고민하고 있었다던 그는 현재 당 최고위원, 서울시당위원장, 이번 지방선거 후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치인 노서영'의 길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유세 팀장을 맡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노 후보에게 "소통할 수 있는 높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자신이 팀장이라고 소개해도 사람들은 후보자를 직접 찾아 말을 건네고는 했다. 그는 "유세 현장에서 늘 낯선 존재처럼 여겨졌다"며 "그럴수록 내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더 발로 뛰고, 더 설득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돌아봤다. 난관을 패배의 경험으로 삼지 않는 건 노 후보의 오랜 지침이다. 2015년, 처음 대학에 입학해 마주했던 세상 앞에서도 그랬다. 대학교 1학년, 언론인을 꿈꿨던 그는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광화문광장으로 향했다. 노 후보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물대포와 최루액을 맞는 무고한 시민들이었다. 그는 경찰 차벽 아래를 기어 유가족을 찾아다녔다. 가까스로 현장을 촬영해 여러 언론사에 제보했지만, 뉴스 한 줄로도 이어지지 못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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