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ctor
버스·지하철 치한들을 움츠리게 만든 여성 | Collector ).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제2회 수요집회(수요시위)가 열린 지 이틀 뒤인 1992년 1월 17일 오전 1시 반경이었다. 이때 제2의 김부남 사건이 발생했다. 열두 살 때부터 계부의 성폭행을 당한 21세 대학생 김보은이 남자 친구와 함께 가해자를 찔러 죽인 사건이었다. 지금의 '성폭력' 개념이 아니라 주로 '강간죄' 개념으로 성범죄를 처벌하던 시절이었다. 성폭행이 여성의 정조를 파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적 자기결정권과 신체는 물론이고 남의 인생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인식도 보편화되지 않았다.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나무라는 분위기도 만만치 않았다. 김부남 사건과 김보은 사건은 그런 사회 풍조에 경종을 울렸다. 국민적 공분과 응원을 일으킨 두 사건은 우리 사회가 성범죄에 대한 전통적 통념에서 벗어나는 디딤돌이 됐다. 제도적 성숙 이루는 데 공헌 두 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긍정적 발전은 우리 사회 전체와 인권 운동가들의 참여 및 공헌에 힘입은 것이지만, 이 과정에서 남다른 역할을 해낸 인물에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1992년에 전국구(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어 제14대 국회에 들어간 이우정이 바로 그다. <자유의 종>을 쓴 소설가 이해조(1869~1927)의 손녀인 그는 우리 사회가 두 사건을 발판으로 제도적 성숙을 이루는 데 공헌했다. 그는 두 사건을 계기로 형성된 국민적 공감대를 국회 입법으로 연결시켰다. 그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이 1994년 1월 5일의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특별법)'의 제정이다. 제목에도 나타나듯이 이 법은 성범죄 피해자의 보호에 주력했다. 또 성범죄에 대한 처벌 가능성도 넓혔다. 이 법 시행일에 발행된 그해 4월 1일 자 <동아일보>는 친고죄 조항에 대한 예외가 인정돼 "그동안 가족 내의 비밀로 묻혀 있었던 근친강간, 특히 미성년 자녀에 대한 강간을 제삼자의 고소로도 처벌할 수 있게 됐다"고 평했다. 또 직장 상사 등이 업무상 관계를 악용해 성추행하는 경우에 2년 이하 징역이나 5백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 법의 의의라고 설명했다. 전체 내용보기"> ).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제2회 수요집회(수요시위)가 열린 지 이틀 뒤인 1992년 1월 17일 오전 1시 반경이었다. 이때 제2의 김부남 사건이 발생했다. 열두 살 때부터 계부의 성폭행을 당한 21세 대학생 김보은이 남자 친구와 함께 가해자를 찔러 죽인 사건이었다. 지금의 '성폭력' 개념이 아니라 주로 '강간죄' 개념으로 성범죄를 처벌하던 시절이었다. 성폭행이 여성의 정조를 파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적 자기결정권과 신체는 물론이고 남의 인생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인식도 보편화되지 않았다.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나무라는 분위기도 만만치 않았다. 김부남 사건과 김보은 사건은 그런 사회 풍조에 경종을 울렸다. 국민적 공분과 응원을 일으킨 두 사건은 우리 사회가 성범죄에 대한 전통적 통념에서 벗어나는 디딤돌이 됐다. 제도적 성숙 이루는 데 공헌 두 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긍정적 발전은 우리 사회 전체와 인권 운동가들의 참여 및 공헌에 힘입은 것이지만, 이 과정에서 남다른 역할을 해낸 인물에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1992년에 전국구(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어 제14대 국회에 들어간 이우정이 바로 그다. <자유의 종>을 쓴 소설가 이해조(1869~1927)의 손녀인 그는 우리 사회가 두 사건을 발판으로 제도적 성숙을 이루는 데 공헌했다. 그는 두 사건을 계기로 형성된 국민적 공감대를 국회 입법으로 연결시켰다. 그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이 1994년 1월 5일의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특별법)'의 제정이다. 제목에도 나타나듯이 이 법은 성범죄 피해자의 보호에 주력했다. 또 성범죄에 대한 처벌 가능성도 넓혔다. 이 법 시행일에 발행된 그해 4월 1일 자 <동아일보>는 친고죄 조항에 대한 예외가 인정돼 "그동안 가족 내의 비밀로 묻혀 있었던 근친강간, 특히 미성년 자녀에 대한 강간을 제삼자의 고소로도 처벌할 수 있게 됐다"고 평했다. 또 직장 상사 등이 업무상 관계를 악용해 성추행하는 경우에 2년 이하 징역이나 5백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 법의 의의라고 설명했다. 전체 내용보기"> ).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제2회 수요집회(수요시위)가 열린 지 이틀 뒤인 1992년 1월 17일 오전 1시 반경이었다. 이때 제2의 김부남 사건이 발생했다. 열두 살 때부터 계부의 성폭행을 당한 21세 대학생 김보은이 남자 친구와 함께 가해자를 찔러 죽인 사건이었다. 지금의 '성폭력' 개념이 아니라 주로 '강간죄' 개념으로 성범죄를 처벌하던 시절이었다. 성폭행이 여성의 정조를 파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적 자기결정권과 신체는 물론이고 남의 인생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인식도 보편화되지 않았다.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나무라는 분위기도 만만치 않았다. 김부남 사건과 김보은 사건은 그런 사회 풍조에 경종을 울렸다. 국민적 공분과 응원을 일으킨 두 사건은 우리 사회가 성범죄에 대한 전통적 통념에서 벗어나는 디딤돌이 됐다. 제도적 성숙 이루는 데 공헌 두 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긍정적 발전은 우리 사회 전체와 인권 운동가들의 참여 및 공헌에 힘입은 것이지만, 이 과정에서 남다른 역할을 해낸 인물에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1992년에 전국구(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어 제14대 국회에 들어간 이우정이 바로 그다. <자유의 종>을 쓴 소설가 이해조(1869~1927)의 손녀인 그는 우리 사회가 두 사건을 발판으로 제도적 성숙을 이루는 데 공헌했다. 그는 두 사건을 계기로 형성된 국민적 공감대를 국회 입법으로 연결시켰다. 그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이 1994년 1월 5일의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특별법)'의 제정이다. 제목에도 나타나듯이 이 법은 성범죄 피해자의 보호에 주력했다. 또 성범죄에 대한 처벌 가능성도 넓혔다. 이 법 시행일에 발행된 그해 4월 1일 자 <동아일보>는 친고죄 조항에 대한 예외가 인정돼 "그동안 가족 내의 비밀로 묻혀 있었던 근친강간, 특히 미성년 자녀에 대한 강간을 제삼자의 고소로도 처벌할 수 있게 됐다"고 평했다. 또 직장 상사 등이 업무상 관계를 악용해 성추행하는 경우에 2년 이하 징역이나 5백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 법의 의의라고 설명했다. 전체 내용보기">
버스·지하철 치한들을 움츠리게 만든 여성
오마이뉴스

버스·지하철 치한들을 움츠리게 만든 여성

걸프전쟁(1990.8~1991.2)으로 한국인들의 마음이 뒤숭숭하던 1991년 1월 30일 오후 1시 20분경이었다. 전북 남원군의 구멍가게를 방문한 30세 김부남이 55세 된 주인 남자를 불러내더니, 남자가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칼을 들어 즉사시켰다. 아홉 살 때 성폭행을 당한 뒤 협박 때문에 침묵하고 살았던 김부남은 그 트라우마로 인한 정신분열증,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남성 기피증에 시달렸다. 그해 8월 16일, 전주지방법원 제1호 법정에서 판사가 "하고 싶은 얘기 없습니까?"라고 묻자, 김부남은 "사람을 죽인 게 아니라 짐승을 죽였어요"라고 짤막하게 답했다(17일 자 <경향신문>).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제2회 수요집회(수요시위)가 열린 지 이틀 뒤인 1992년 1월 17일 오전 1시 반경이었다. 이때 제2의 김부남 사건이 발생했다. 열두 살 때부터 계부의 성폭행을 당한 21세 대학생 김보은이 남자 친구와 함께 가해자를 찔러 죽인 사건이었다. 지금의 '성폭력' 개념이 아니라 주로 '강간죄' 개념으로 성범죄를 처벌하던 시절이었다. 성폭행이 여성의 정조를 파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성적 자기결정권과 신체는 물론이고 남의 인생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인식도 보편화되지 않았다.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나무라는 분위기도 만만치 않았다. 김부남 사건과 김보은 사건은 그런 사회 풍조에 경종을 울렸다. 국민적 공분과 응원을 일으킨 두 사건은 우리 사회가 성범죄에 대한 전통적 통념에서 벗어나는 디딤돌이 됐다. 제도적 성숙 이루는 데 공헌 두 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긍정적 발전은 우리 사회 전체와 인권 운동가들의 참여 및 공헌에 힘입은 것이지만, 이 과정에서 남다른 역할을 해낸 인물에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1992년에 전국구(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어 제14대 국회에 들어간 이우정이 바로 그다. <자유의 종>을 쓴 소설가 이해조(1869~1927)의 손녀인 그는 우리 사회가 두 사건을 발판으로 제도적 성숙을 이루는 데 공헌했다. 그는 두 사건을 계기로 형성된 국민적 공감대를 국회 입법으로 연결시켰다. 그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이 1994년 1월 5일의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특별법)'의 제정이다. 제목에도 나타나듯이 이 법은 성범죄 피해자의 보호에 주력했다. 또 성범죄에 대한 처벌 가능성도 넓혔다. 이 법 시행일에 발행된 그해 4월 1일 자 <동아일보>는 친고죄 조항에 대한 예외가 인정돼 "그동안 가족 내의 비밀로 묻혀 있었던 근친강간, 특히 미성년 자녀에 대한 강간을 제삼자의 고소로도 처벌할 수 있게 됐다"고 평했다. 또 직장 상사 등이 업무상 관계를 악용해 성추행하는 경우에 2년 이하 징역이나 5백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 법의 의의라고 설명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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