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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다녀올게요" 몇 시간씩 사라지는 아이, 알고 보니 | Collector
오마이뉴스

"화장실 다녀올게요" 몇 시간씩 사라지는 아이, 알고 보니

민수(가명)가 학교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던 그날, 나는 교문 앞에 서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급히 부모에게 연락하고 실종 신고를 한 뒤, 동료 교사들이 흩어져 학교 인근을 뒤지던 긴박한 시간은 이상하게도 지금 기억 속에서 흐릿하다. 그날 우리는 아이가 있을 만한 곳을 하나씩 찍어가며 찾았다. 인근 편의점과 공원은 물론이고, 교사 몇 명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 피시방들까지 들어가 수색하러 다녔다. 오히려 내 뇌리에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은, 해가 붉게 기울 무렵 민수가 교문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던 순간이다. 반나절 전, 멍하고 지쳐 있던 얼굴과는 전혀 달랐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가볍고 환했으며, 교실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투명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어디에 다녀왔느냐는 물음에 아이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냥 인근 도서관에 있었어요." 학교를 발칵 뒤집어놓은 아이치고는 너무 평온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아이는 그곳에서 대단한 공부를 한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저 열람실 구석 자리에 가만히 앉아 창밖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누군가 연필을 굴리는 사각거림과 책장 넘기는 소리를 들으며 반나절을 보냈다고 했다. 그 건조하고 고요한 고백을 듣는 순간, 안도감과 함께 설명하기 어려운 서늘함이 가슴을 쳤다. "세상이 모래처럼 바스라져 보였어요" 나는 오랫동안 '목표'가 삶을 이끄는 가장 확실한 동력이라고 믿어왔다. 성적, 등급, 명문대 진학. 숫자로 증명되는 이 명확한 목표들은 학교를 운영하고 아이들을 관리하기에도 분명 편하다. 그래서 어른들은 불안해하는 아이들에게 늘 같은 말을 건넨다. "조금만 더 참아. 대학이라는 목표만 보고 가." 그 말이 거친 세상을 버티게 할 동아줄이 될 거라 굳게 믿었다. 그러나 상담실에 마주 앉은 민수는 내가 맹신해 온 '목표의 신화'가 어떤 순간에는 얼마나 폭력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선생님, 수업을 듣는데 갑자기 세상이 다 모래처럼 바스라져 보였어요. 미래에 행복해지기 위해 꾹 참고 열심히 해서 대학 가고 취직하고… 그렇게 하면 정말 행복해질까요? 당장 현재가 너무 고통스러운데, 언제 올지도 모르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고통을 참는다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었어요. 갑자기 목이 졸린 것처럼 숨이 안 쉬어졌어요. 그런데 도서관 구석에서 가만히 하늘을 보고 있으니까, 그때야 비로소 숨이 트이더라고요." 민수는 목표를 잃어버려서 방황한 것이 아니었다. 맹목적인 목표만 남고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삶의 이유, 즉 방향이 지워진 현실 앞에서 숨이 막혀가고 있었던 것이다. 목표 자체가 문제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문제는 목표가 삶의 전부가 되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회복할 여백과 "왜"라는 질문이 사라질 때 목표가 사람을 붙드는 끈이 아니라 목을 조이는 밧줄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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