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내 억울한 감정을 말했을 때 목이 아픈데 박하사탕을 먹을 때처럼 시원하다." "흥부처럼 착한 일을 하고 박을 탔을 때 나왔으면 하는 것은 부모님의 '에너지'와 '부모님 건강'이다. 왜냐하면 부모님도 좀 늙고 그러니까 에너지랑 건강을 주고 싶다." 나는 매일 아이들의 이런 문장과 만난다. 무릎을 치며 웃음을 터뜨리다가도, 대체 어떤 마음이어야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는 건지 깊은 감탄에 빠지곤 한다.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친 지 어느덧 3년.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에게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글을 마주할 때마다 느껴지는 문장의 신선함과 날것 그대로의 감정 표현은 매번 나를 놀라게 한다. 그런데 최근 많은 이들이 나에게 묻고,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 명령어 한 번이면 전문적이고 매끄러운 글이 쏟아지는 AI 시대에, 글쓰기 선생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굳이,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독려하는 것은 또 어떤 사명감 때문일까?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날수록 답은 명징해진다. AI 시대이기 때문에 더더욱 나만의 글쓰기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AI 시대에 더 필요한 나만의 글쓰기 아이들의 글 중에는 재치가 넘치는 글도 있지만, 반대로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무감각한' 글도 많다. 그 차이는 바로 '생각의 부재'에서 온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모르겠어요", "왜 그런 것까지 생각해야 해요?"라며 사고 자체를 거부하는 아이들이 늘어난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짧아지고 사고의 회로는 단순해진다. 여기에 AI의 유용성까지 접하게 된 아이들은 '왜 굳이 글을 써야 해요? 어차피 AI가 더 잘 써주는데요'라며 글쓰기의 이유를 더욱 잃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 기술을 가르치기 전, 왜 스스로 써야 하는지, 왜 다양한 시각이 필요한지부터 부지런히 설득한다. 그럴 때 아이들에게 '색깔' 비유를 자주 들려준다. "OO아, 넌 어떤 색을 좋아해?" "노란색이요!" "OO은?" "빨간색요!" "그런데 이제부터 너희 취향과 상관없이 무조건 회색만 골라야 한다면 어떨까? 그게 제일 무난하고 깔끔하니까 그것 밖에 고를 수 없다면?" 아이들의 미간이 금세 찌푸려진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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