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너 어디 살아?" "이게 좀 설명이 긴데." "길게 뭐 있어. 도시 이름 말하면 되는데." "경북도청신도시야." "도청이 있고, 신도시란 뜻이구나. 그래서 거기가 어딘데?" "도시 이름이 경북도청신도시라니까." "어? 거긴 서울이나 부산 같은 이름이 없어?" 내가 사는 곳을 묻는 누군가와 대화하다 보면 늘 겪는 일이다. 전국에 도청을 이전하면서 몇 군데 신도시가 생겼다. 충남도청이 이전하면서 내포신도시가 생겼고, 전남도청을 이전하면서 남악신도시가 생겼다. 경북도청신도시는 경북도청 이전으로 생긴 도시다. 다들 '내포' '남악'이라는 이름이 생겼지만, 경북도청신도시는 제대로 된 이름이 없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름이 명쾌하고 쉽게 다가와서 좋구먼. 누가 들어도 경북도청이 있는 신도시라고 알 수 있 잖아."라고. 도시는 지역 정체성을 만들면서 성장한다. 정체성이 강해질수록 결속력은 강해진다. '경북도청신도시'는 도청 때문에 생긴 도시라는 의도를 드러내고, 도청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혹시라도 먼 미래에 도청이 이전하면 이 이름은 그야말로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다. 충남도청 이전으로 생긴 '내포'는 그 지역의 오래된 지명이다. 지역성과 역사성이 담긴 이름이다. 남악 또한 지역명이다. 지역명엔 그 이름과 더불어 살아온 이들의 추억과 경험이 녹아 있다. 경북도청신도시는 주객이 전도되었다. 주인공은 '경북도청'이고, 도시와 시민은 부속물처럼 느껴진다. 진정한 의미의 시민권이나 애향심이 생기기 어려운 환경이다. 서울 사람, 부산 사람이라고 할 때 느껴지는 확고한 정체성, '뉴요커', '파리지앵'이라는 명칭에 담긴 자부심을 이 이름에서는 기대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책임질 주인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디 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경북도청 사람인데요"라고 하면 공무원 느낌으로 다가온다. 도시민으로서 정체성이 느껴지지 않 는다. 이름을 이렇게 지으면 확장성도 기대할 수 없다. 서울, 부산, 세종, 내포, 남악 같은 이름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역의 이야기가 붙는다. '경북도청신도시'는 '경북도청'이란 이름의 그늘이 점점 더 짙어진다. 영원히 '경북도청'과 거기에 딸린 그 무엇무엇일 뿐이다. 경북도청에 딸린 도시명이니 당연히 '우리 동네'라는 공동체의식이 생기기 힘들다. 결국 지역명은 제각기, 마음 내키는 대로 부르는 이름이 돼 버렸다. "어디 살아요?"라고 물으면 누군가는 "도청 살아요"라고 말한다. 지역에선 다 안다. 그 도청이 경북도청이라는 걸. 하지만, 세상에. 도청에 산다니.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도청 당직자'거나 '숙직자'라고 오해하기 딱 좋은 말이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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