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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의 철학자이며 사회학자였던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는 "인간은 삶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었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인간은 생존과 존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집단을 이루어 함께 사는 사회(社會)를 형성하고, 태생적 결핍과 유한한 삶에 대한 두려움을 초월하기 위해 종교를 만들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래서일까. 세상의 모든 종교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화두로 삼고 있다. 특히 불교에서는 우리 삶의 끝은 죽음이 아니라 끊임없이 순환하는 윤회(輪廻, Samsara)의 과정으로 본다. 비록 육체는 소멸하더라도 생전에 지었던 행위의 결과인 업보(業報, Karma)에 따라 인간이나 동물 등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다. 이 과정을 고통(苦, Dukkha)이라 간주했으며, 이 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 '열반(涅槃)'에 이르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기원전 5세기경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온 건 지금으로부터 1654년 전인 서기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의 일이다. <삼국유사>는 불교가 고구려에 전해지는 과정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소수림왕 2년 전진(前秦. 351~394)의 왕 부견(符堅)이 고구려에 사신을 보냈다. 아울러 전도승 순도(順道)와 불상·경문을 함께 파견해 불교를 전했다."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백제는 384년에 신라는 이보다 140여 년 늦은 527년에 불교를 받아들였다.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삼국시대 사람들은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는 동안 선업(善業)과 공덕을 쌓으며 고난을 극복하고자 했다. 사찰을 짓고 경배의 대상인 불상을 만들어 극락정토에서 왕생하기를 염원했다. 한반도에 불교가 정착하던 6세기 경에는 삼존불상이 크게 유행했다. 삼존불(三尊佛)이란 하나의 광배(光背, 부처의 주위에서 나는 빛을 형상으로 표현한 것)에 세 부처님을 모시는 형태로 '일광삼존불(一光三尊佛)'이라고도 한다. 어느 부처님을 중앙에 모시느냐에 따라서 석가삼존불, 아미타삼존불, 약사삼존불로 구분한다. 현재 우리나라 지정문화유산 중에서 불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1700년 불교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그중에서 삼국시대 유행했던 금동삼존불상 2점을 살펴보자.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것으로 중생들이 어디서나 부처님의 설법을 전할 수 있도록 아주 작게 만든 휴대용 불상이다. 1500년 전 러브스토리 '정지원명 삼존불상' 1919년 일제 강점기 시절, 충남 부여에 있는 부소산성의 사비루(송월대) 근처에서 아주 작은 불상이 하나 발견됐다. 높이 8.5cm 손바닥 반 정도 크기로 하나의 광배에 본존불과 좌우에 보살상을 함께 새겨 넣은 일광삼존불이다. 땅속에 오래 묻혔던 탓으로 왼쪽의 보살상은 상당 부분 파손된 상태다. 정식명칭이 '금동정지원명석가여래삼존입상(金銅鄭智遠銘釋迦如來三尊立像)'이다. 6세기에 만들어진 백제 불상으로 중앙에 본존불의 얼굴은 갸름하면서 살이 오른 모습이며 눈·코·입의 윤곽이 뚜렷하다. 광배 뒷면에 16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살펴보면 鄭智遠爲亡妻趙思(정지원위망처조사) 敬造金像(경조금상) 早離三塗(조리삼도). 해석하자면, "정지원이 죽은 아내 조사(趙思)를 위하여 금색 불상을 공경하게 조성하오니 빨리 삼도(三塗)를 떠나게 해 주소서"라는 뜻이다. 여기서 삼도는 죽은 뒤 가게 되는 여섯 길(六道) 중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 가는 세 길(三道) 즉 지옥도, 축생도, 아귀도를 의미한다. 남편 정지원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조사가 삼도의 고통에서 벗어나 극락왕생 하기를 염원하는 마음에서 이 불상을 만든 것이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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