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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서울 거리가 똥 천지"
어느 대통령 지지자들의 시위

1990년과 1991년에 노무현 등과 함께 '꼬마민주당'을 이끈 이기택(1937~2016)은 열아홉 살 때인 1956년에는 건강문제 때문에 미래가 불투명했다. 부산상고의 성적 우수생이었던 그는 1학년 때부터 앓은 십이지장궤양 때문에 졸업을 앞두고 홍역을 치렀다. 이기택 회고록인 <우행(牛行), 내 길을 걷다>는 "3학년 2학기 입시준비 막바지 시기에 십이지장궤양이 재발"했다면서 "상태가 심각해 입시 준비는커녕 학교도 나갈 수 없게 되어 출석 일수가 모자라 졸업까지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라고 말한다. 학교 측은 그의 성적과 건강을 고려해 연세대 무시험 특례입학생으로 추천해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서울대 화학공학과 출신인 그의 형은 일단 요양한 뒤 다시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라고 권했다. 형의 권유에 따라 재수를 선택한 그는 "머리에 이부자리를 인 어머니를 따라 쌀자루를 등에 지고 양산 통도사에서 좀 더 들어간 곳에 있는 백련암이라는 암자를" 찾아갔다. 어머니가 하산한 뒤에는 그 홀로 산중에 남아 죽을 끓여 먹으며 지냈다. 고시생들이 많았지만 환자들도 있었던 그곳에서 느낀 심경을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성장기였던 그 시기에 나는 제때 대학에 진학도 못하고 홀로 깊은 산속 암자에 들어가 요양해야 했다. 참으로 불행했다. 사실, 그때 나는 미래를 비출 등불이 꺼진 듯 무척이나 낙망했었다. 한마디로 인생의 낙오자가 된 것만 같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시기가 결과적으로 새옹지마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훗날 내가 다른 길을 저버리고 정계에 투신하게 된 데는 아마도 이때의 영향이 지대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등불이 꺼진 듯"한 백련암 생활 중에도 고시생들과 세상 이야기도 하고, 그들이 외출했다가 갖고 돌아오는 "신문쪼가리"를 읽으며 토론에도 끼어들었다. 이는 "학교와 친구들밖에 몰랐던 내가 비로소 세상사에 관심을 갖고 불의한 시대에 공분하는 성인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그는 돌아본다. 3선 출마 위한 관제시위에 우마차까지 동원 1956년 5·15 정·부통령 선거를 앞둔 이승만은 그해 3월 5일 자유당 임시전당대회에 보낸 유시(諭示)에서 '3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1954년 11월 29일 자신에 한해서만 3선을 허용하는 개헌안을 자기 손으로 공포했던 이승만이 대선을 코앞에 두고 폭탄 발언을 했던 것이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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