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헌법의 생일에 던진 말, '때가 왔다'는 속내는... 5월 3일은 일본 헌법기념일이다. 1947년 시행된 일본국헌법이 2026년으로 79년을 맞은 날, 도쿄에서는 개헌파와 호헌파가 각각 집회를 열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개헌파 집회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논의를 위한 논의'가 아니라 '국회가 판단하기 위한 논의'를 하자고 했다. 앞서 4월 12일 자민당 창당 70주년 당대회에서는 더 선명했다. '헌법 개정은 당의 기본방침이고, 때가 왔다.' 그는 내년 당대회까지 개헌안 발의의 전망이 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말은 짧았지만 정치적 무게는 가볍지 않다. 2월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465석 중 316석을 얻었다. 단독으로 개헌 발의선 310석을 넘긴 것이다. 물론 헌법 개정은 중의원과 참의원 각각 3분의 2 이상 찬성 그리고 국민투표 과반 찬성이 필요하다. 아직 완성된 길은 아니다. 그러나 길의 입구는 이전보다 훨씬 넓어졌다. 다카이치 총리는 2월 18일 기자회견에서 자민당 단독 3분의 2 의석이 '백지위임장'은 아니라고 했다. 여러 목소리를 겸허하게 듣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헌법기념일의 메시지는 그 겸허함보다 시간표를 먼저 들고 나왔다. 그래서 물어야 한다. 지금 일본 정치에서 정말 '때가 온 것'은 무엇인가. 헌법을 바꿀 때인가 아니면 권력이 헌법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점검할 때인가(관련기사: 일본 평화헌법 9조의 정치경제학: 세계유산으로 남겨야… https://omn.kr/2hjw9 ). 민심은 '찬성'보다 '서두르지 말라'에 가깝다 일본 여론은 단순하지 않다. 아사히신문 조사에서 다카이치 정권 아래 개헌 실현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47%로 반대 43%를 앞섰다. 아베 신조 전 총리 시절부터 이어진 같은 질문에서 찬성이 반대를 넘은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요미우리신문 우편 여론조사에서도 '헌법 개정 찬성'은 57%로, 반대 40%를 앞섰다. 표면만 보면 '개헌의 봄'처럼 보인다. 그러나 숫자의 속을 들여다 보면 다른 결이 보인다. 같은 아사히 조사에서 '개헌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응답은 62%였다. 헌법 9조에 대해서는 '변경하지 않는 게 좋다'가 63%로 '변경하는 게 좋다' 30%를 크게 웃돌았다. 교도통신 조사에서도 개헌은 폭넓은 정당 간 합의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70%를 넘었다. 민심은 개헌 자체를 금기시하지 않지만, 승자의 속도에 헌법을 맡기지는 않겠다는 쪽에 더 가깝다. 개헌의 시간표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 일본 실패학이 말하는 안전사회와 제도전환의 조건 거리의 민심은 더 분명했다. 헌법기념일인 5월 3일 전국 220곳에서 '헌법을 살려 평화로운 세계를!'이라는 구호 아래 7만 4000여 명이 모였다. 이미 4월 8일 도쿄 국회의사당 앞 집회에 3만 명이 운집했고, 4월 19일 'NO WAR! 헌법을 바꾸지 마라!' 집회에도 3만 6000명이 참가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참가자의 절반이 20·30대이며 여성이 60%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한국의 촛불·응원봉 집회 문화를 본뜬 젊은 세대의 참가가 늘며 개헌 반대 운동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이 대목에서 일본 신문 사설들의 온도 차도 중요하다. 아사히신문은 5월 3일 사설 제목으로 '개헌 우선주의(개헌ありき)를 반복하는가'라고 물었다. 고베신문은 '그때가 왔다'는 총리의 말을 받아, 다수의 힘으로 헌법을 바꾸려는 움직임은 멈춰야 한다고 썼다. 보수와 진보의 견해 차를 떠나, 일본 사회 내부에 흐르는 핵심 질문은 하나다. 헌법은 국가가 원하는 이야기인가, 시민이 국가를 묶는 장치인가. 긴급사태 조항, 가장 조용한 위험 다카이치 총리는 헌법기념일 산케이신문 인터뷰에서 자민당의 4대 개헌 항목 중 선거구 합구 해소와 긴급사태조항을 먼저 논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자위대 명기는 민감하다. 반면 대규모 재해, 테러, 감염병 대응을 내세운 긴급사태조항은 훨씬 쉽게 다가온다. 누구도 재난 앞에서 느린 정부를 바라지 않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신속한 대응이라는 말이 국회의 감시를 우회하는 통로가 되는 순간, 안전은 시민을 지키는 이름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를 잠시 접어두는 명분이 될 수 있다. 재난 현장에서 속도는 생명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에서 속도는 언제나 통제 장치와 함께 가야 한다. 긴급명령의 범위, 기간, 사후 승인, 사법심사, 정보공개, 피해구제 절차가 촘촘하지 않으면 긴급권력은 임시 조치가 아니라 상시 지름길이 된다. 안전사회는 강한 명령 하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가, 언제, 어떤 근거로 권한을 쓰고, 어떻게 책임지는지 보이는 사회가 안전하다. 그래서 긴급사태조항은 겉으로 가장 무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먼저 들여다봐야 할 조항이다. 헌법의 이름으로 정부가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게 하는 일은 쉽다. 어려운 일은 빠른 정부가 스스로 멈출 수 있는 장치를 함께 설계하는 것이다. 미래 리스크 관리는 '빨리 움직이는 국가'가 아니라 '위험할 때도 법의 선을 넘지 않는 국가'를 목표로 해야 한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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