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나는 저상버스를 타본 사람이다. 그것도 아주 익숙하게. 프랑스 파리에서 보낸 시간 동안, 버스를 타는 행위는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전동 휠체어를 타고 정류장에 서 있으면, 기사는 멀리서부터 나를 확인하고 차체를 인도 쪽으로 낮추는 '닐링(Kneeling)' 시스템을 가동했다. 이어지는 리프트의 기계음은 도시가 나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환대의 신호였다. 그곳에서 나는 누군가의 일상을 방해하는 '예외적 불청객'이 아니라, 정당한 요금을 지불하고 목적지로 향하는 평범한 '승객'일 뿐이었다. 서울에서도 그 감각은 어느 정도 유효했다. 물론 모든 정류장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오늘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원초적인 공포는 없었다. 한 대의 버스를 놓치더라도 10분 뒤면 다음 저상버스가 온다는 '확실성', 그리고 버스가 여의치 않으면 인근 지하철역으로 이동해 경로를 수정할 수 있는 '대체 가능성'이 나를 지탱했다. 그 도시들에서 이동권은 추상적인 인권 선언이 아니라, 내 삶의 반경을 결정하는 단단한 물리적 토대였다. 내가 충북 청주에서 버스를 타지 않는 이유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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