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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67] 근대식 무기인 무라타 소총으로 무장한 일본군 | Collector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67] 근대식 무기인 무라타 소총으로 무장한 일본군
오마이뉴스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67] 근대식 무기인 무라타 소총으로 무장한 일본군

동학농민군은 근대식 무기인 소총과 대포로 무장한 일본군과 관군에 대항하여 40~50 차례에 걸쳐 혈전을 벌였다. 그러나 낡은 화승총을 비롯 죽창이나 농기구로 무장한 동학농민군에 비해 일본군은 스나이더 소총과 무라타 소총 등 현대식 병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대포까지 끌고 왔다. 동학농민군의 화력과 일본군의 화력은 어림잡아 1 대 250의 수준이었다. 영국에서 개발되어 수입한 스나이더(snider) 소총은 일본이 메이지 정부의 찬반 세력간에 벌어진 내전(1868년) 때에 처음으로 사용되었으며 1874년 일본의 타이완 침략 때도 사용되었던 신형무기다. 이 소총은 영국제 엔필드 소총을 개량하여 만든 것으로 후발식 단발 소총이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사용했던 조총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우수한 성능의 소총이었다. 동학농민군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조선에 들어온 일본군 후비병(後備兵)과 서울 수비대는 물론 동학농민군 학살을 전담한 제19대대 (대대장 미나미 고시로)의 주력무기가 바로 이 스나이더 소총이었다. 스나이더 소총은 일부 조선 경군에게도 지급되었다. 이 소총은 우금치 전투를 비롯한 각 지역의 전투에서 수많은 동학농민군을 살상하는 주무기가 되었다. 일본은 동학농민군의 학살을 위해 스나이더 소총과 탄약 10만 발을 일본 시모노세키 소재 병기창에서 실어왔다. 스나이더 소총이 영국산이라면 무라타 소총은 일본이 직접 개발한 병기다. 메이지 정부는 일본열도의 통일을 이룬 다음 1871년 각 번(蕃)이 소유하고 있던 모든 병기류를 중앙정부에 이관토록 명령하였다. 이 때 중앙정부에 이관된 서양 소총이 무려 18만 여 정에 이르렀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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