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5월 7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전광판에 숫자가 떴다. 재석 191명, 찬성 188명, 기권 3명. 생명안전기본법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세월호 참사(2014년) 이후 12년, 처음 법안이 발의된 지 6년여 만의 일이다. 이 법은 모든 국민의 안전권을 명시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독립조사기구 설치, 5년 단위 생명안전종합계획 수립의 근거를 담았다. 188명이 찬성한 날, 하지만 끝나지 않은 질문 숫자는 차가웠다. 그러나 방청석은 그렇지 않았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는 의사봉이 내려간 뒤 "감사합니다"라고 외쳤다. 쿠팡 과로사 피해 고 장덕준씨의 어머니 박미숙씨는 자리에 앉아 주먹을 쥐어 보였다. 같은 법을 바라보는 두 마음이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다른 유족들은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되겠구나"라는 안도, 그리고 "갈 길이 너무 멀다"는 현재형의 아픔이었다. 그래서 5월 7일을 단순한 '통과의 날'로만 적을 수는 없다. 법은 국회를 통과했지만, 사람의 목숨을 지키는 일은 본회의장 밖에서 시작된다. 공장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물류센터 야간작업장 안에서, 지하차도와 병원과 공연장과 여객기 안에서 확인돼야 한다. 유족이 거리로 나가 진상규명을 외친 뒤에야 움직이는 나라가 아니라, 사고가 나기 전에 위험을 찾아내는 나라가 될 수 있는가. 생명안전기본법이 우리에게 던진 첫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법이 만들어진 날을 기뻐하는 일은 당연하다. 그러나 박수는 짧고, 현장은 길다. 생명안전기본법이 진짜 법이 되려면 이제 국회 의사록 밖으로 나와야 한다. 정부는 하위 법령을 미루지 말아야 하고, 국회는 예산을 따져야 하며, 기업은 '위험을 외주화'하는 습관부터 멈춰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도 "중앙정부 일"이라며 물러서 있을 수 없다. 공장, 물류센터, 지하차도, 병원, 학교, 항만의 위험은 결국 지역의 골목과 일터에서 먼저 보이기 때문이다. 188표는 출발선이다. 그 숫자가 또 하나의 국회 기록으로만 남지 않으려면, 사고가 난 뒤 유족이 거리로 나가 진상규명을 외치는 순서를 바꿔야 한다. 국가는 유족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야 한다. 위험을 먼저 찾아내고, 조사 결과를 숨기지 않고, 권고가 실제로 이행됐는지 끝까지 확인해야 한다. 안전 대한민국의 원년은 선언으로 열리지 않는다. 누군가의 죽음 뒤에야 매뉴얼을 고치는 낡은 습관을 끊는 날, 그때 비로소 시작된다. 법에 적힌 세 가지: 권리, 조사, 계획 생명안전기본법의 핵심은 어렵지 않다. 첫째, 모든 사람의 안전권을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점을 법에 적었다. 둘째, 대형참사가 일어나면 독립조사기구가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맡도록 했다. 셋째, 정부가 5년마다 국가 차원의 안전권 보장 종합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박주민·용혜인·한창민 의원 등 77명이 2025년 3월 공동 발의한 법안이 2026년 5월 7일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안전은 행정 구호에서 권리의 언어로 옮겨왔다. 이 대목에서 박수만 칠 수는 없다. 법률 문장은 사람을 바로 살리지 못한다. 시행령, 예산, 인력, 자료 공개, 조사 방식이 뒤따라야 현장의 문이 열린다. '안전사회'는 좋은 말이지만, 작업대 위의 방호덮개가 빠져 있으면 공허하다. '미래 리스크 관리'도 회의실 문서로만 남으면 소용없다. 배달 노동자의 폭염 시간, 물류센터의 야간교대, 병원과 지하차도의 대피동선, 공장화재 때 끊기는 보고선까지 들어가야 한다. 안전혁명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사람이 죽고 나서야 보이는 고장 난 절차를 죽기 전에 고치는 일이다. 아직 현장은 법보다 빠르게 다친다 고용노동부가 2026년 3월 31일 발표한 잠정 통계를 보면 2025년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는 605명, 사고 건수는 573건이었다. 전년보다 16명 늘었다. 산업재해를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숫자 하나는 분명히 말한다. 처벌도 필요하고 사과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다음 재난(사망)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생명안전기본법의 첫해는 '누가 책임자인가'만 따지는 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책임 추궁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질문만 남으면 현장 직원은 입을 닫고, 회사는 자료를 숨기며, 관청은 책임선을 긋는다. 다음 사고를 막는 데 필요한 질문은 조금 달라야 한다. "왜 경고가 묵살됐나", "왜 그 시간에 그 사람이 혼자 있었나", "왜 설비는 멈추지 않았나", "왜 피해 가족은 스스로 국회와 길거리로 나와야 했나" 이런 질문이 법의 첫해에 제도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일본 실패학의 교훈: 한 사람의 실수만 보면 장치는 숨는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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