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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지를 물을 때 이 주제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이 가장 많이 사용된다. 인체 비례를 묘사한 그림인데, 고대 로마 건축가 비트루비우스의 건축학 서적에서 "인체에 적용되는 비례의 규칙을 신전 건축에 사용해야 한다"라고 쓴 대목을 읽고 그렸다고 해서 붙여진 제목이다. 다빈치는 이 그림을 제작하며 실제로 사람의 각 기관을 눈금자로 재가면서 측정한 결과를 글로 적어두었다. "자연이 낸 인체의 중심은 배꼽이다. 등을 대고 누워서 팔다리를 뻗은 다음 컴퍼스 중심을 배꼽에 맞추고 원을 돌리면 두 팔의 손가락 끝과 두 발의 발가락 끝이 원에 붙는다." 인간의 몸을 기하학에서 다루는 도형처럼, 수학을 이용해 계량화하여 묘사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유럽 중세는 기독교적 인간관이 지배했다. 육체는 동물과 다름없이 욕구에 좌우되는 껍데기에 불과하며, 인간의 본질은 신이 창조할 때 숨을 불어넣어 만들어 준 영혼에 있다는 사고방식이었다. 다빈치의 그림에서 보이는 인간관은 긴 중세의 터널 끝에서 시대의 변화를 알린 르네상스의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흔히 르네상스를 '인간과 자연의 재발견'이라고 한다. 신 중심의 세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성과 감정을 통한 자유의지 실현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그리스적 인간의 재발견이었다. 종교가 유포하는 신비적 세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감각으로 직접 관찰하고 과학적으로 규명한다는 점에서 자연의 재발견이었다. 르네상스 지식인과 예술가들은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자연법칙을 찾아내고자 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인 다빈치는 미술가이자 과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작업 노트>에 "과학 없이 실천에만 몰두하는 사람은 키도 나침반도 없이 바다로 나가는 뱃사람과 같아서 어디로 가는지 결코 확신할 수 없다"라고 기록해 두었다. 기계공학자의 시각으로 해부학을 바라보기도 했다. 인체를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게 만들어지고 움직이는 기계 장치로 보았고, 그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자 했다. 눈·코·귀·입 등 얼굴의 예민한 감각 기관은 물론이고 팔과 다리, 나아가서는 몸 안의 각종 장기가 정교한 기계 장치처럼 설계되고 작동한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다빈치는 30구가 넘는 시신을 해부하며 인체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기록으로 남겼다. 당시는 교회에서 인체 해부를 엄격히 금지했기에 자칫 이단자로 끔찍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각 장기의 모양과 연결, 온몸에 퍼져 있는 근육·신경·힘줄 등을 샅샅이 살폈다. 마치 기계가 움직이는 원리처럼 신체의 각 기관이 구부러지고 회전하는 방식을 탐구했다. 근대에 접어들어 비약적으로 확대된 기계주의적 인간관은 어느 정도 르네상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다빈치 시대에 맹아를 형성한, 기계적 작용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사고방식은 현대까지 이어졌다. 근대의 기계문명 아래에서 기계로서의 인간에 주목했다면, 현대에 와서는 새로운 과학기술의 발전을 반영하면서 훨씬 고도화된 형태로 나타났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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