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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있는 비석이 알고 보니... 이분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 Collector
산에 있는 비석이 알고 보니... 이분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오마이뉴스

산에 있는 비석이 알고 보니... 이분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한자를 쓸 일은 있지만, 한자로 문장을 만들 필요는 없는 것이 현대 한국인들의 문자 생활이다. 하지만 한문 문법에 대한 지식은 한국 사회에 여전히 긴요하다. 백 년 전까지 생산된 대부분의 문서가 한문으로 적혔으므로 우리 사회가 그 정보를 이해하려면 이 문법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모든 한문 서적들을 한글로 몽땅 번역해 둔다 해도, 몇 십년이 흐르면 다시 번역해야 된다. 수십 년 전에 한글로 번역된 외국 서적은 지금의 한국인들에게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래서 한문을 자기 시대의 감각에 맞게 한글로 번역할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매세대 배출돼야 한다. 역사학자 겸 한학자인 청명(靑溟) 임창순(1914~1999)은 우리 사회의 그 같은 수요를 위해 일생을 바쳤다. 지곡서당과 태동고전연구소의 설립자인 그는 한문 전문가들을 우리 사회에 대거 배출하는 공로를 세웠다. 비문 해석을 통해 한민족의 역사를 밝혀낸 사람 78세 된 임창순과의 인터뷰를 담은 1992년 2월 14일 자 <한겨레>는 "30여 년 동안 청명을 거쳐간 수료생은 비정규적 수강생을 포함해 줄잡아 5천여 명이 넘는다"고 알려준다. 그 일부는 1990년대 초반인 이 시기에 학계의 중추적 위치에 있었다. "지곡서당에서 3년의 정규과정을 마친 40여 명이 학계에 진출해 그들 중 10여 명은 중견 교수로 활약하고 있으며 나머지 수료생들도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이수 중이라고 이 기사는 말한다. 박정희 정권 때는 한글 전용화 정책으로 인해 한자 교육이 많이 위축됐다. 이런 시기에 임창순은 한문 전문가들을 대거 양성했다. 그렇다고 그가 한글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했던 것은 아니다. 역사학자이기도 했던 그가 사재를 털고 장학금을 주면서까지 한문 전문가들을 배출한 것은 그것이 한국 역사의 이해를 위해서도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위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목표가 '한문 보급의 대중화'는 아니라고 밝혔다. 일반 대중은 한글을 전용하더라도 한문 전문가들은 남겨둬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문을 현대적 의미에 맞고 정확하게 뜻풀이할 수 있는 유능한 전문가가 있으면 돼요. 지곡서당을 차린 것도 한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양성하기 위한 것입니다." 과거의 정보를 현재의 언어로 전달하는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그의 사업은 엄밀히 말하면 국가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 일을 위해 한 개인이 자기 평생을 바쳤던 것이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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