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메크네스의 아침은 새벽 5시 30분, 인근 모스크 스피커에서 나오는 기도 소리로 시작됐다. 아마 모로코에 있는 동안 아침마다 듣게 될 소리로 알람이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아드(모로코 전통 가옥)의 침대는 크고 편안했으나, 강렬한 햇빛에 바짝 마른 이불깃은 풀을 먹인 듯 뻣뻣한 게 낯설면서도 어릴 적 향수를 자극하며 정겹게 다가왔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고대 로마 문명 출근하듯 오전 8시 반에 모여 차를 타고 메크네스에서 20분 거리의 고대 로마 문명을 만나러 갔다. 아프리카에서 로마 문명이라? 호기심을 갖고 도착한 곳은 서기 44년,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모리타니를 합병하면서 로마 제국의 최서남단 거점 도시로 번성했던 볼루빌리스(Volubilis)였다. 볼루빌리스는 로마가 침략하기 전까지 원주민인 아마지그(Amazigh)족이 세운 도시로 비옥한 토양과 풍부한 일조량 덕에 대규모 농경 지대였다. 이곳을 점령한 고대 로마가 올리브유를 생산해 로마로 수출하면서, 볼루빌리스는 한때 2만 명 이상이 거주하는 대도시로 발전했다. 유적지 곳곳에서 발견되는 올리브 압착기와 저장 창고가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올리브유 무역으로 부를 쌓은 로마인들은 본국 못지않은 풍요를 누렸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유적들이 그 번영을 보여주는데, 저택의 바닥에는 '헤라클레스의 고난', '디오니소스' 등 신화 속 장면을 정교하게 묘사한 바닥 모자이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법정이나 공공 회의장으로 사용된 바실리카 등의 거대한 건축물 잔해도 일부 보였다. 특히, 사교의 장이기도 했던 공중목욕탕 유적을 보면서 그 시대 귀족 생활의 사치를 실감했다. 이 밖에도 로마의 상징인 수로 시스템이 이곳에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볼루빌리스에서 단연 눈길을 끈 유적은 카라칼라 개선문이었다. 서기 217년경 로마 황제 카라칼라가 이곳 주민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고 세금을 면제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건립되었다는 개선문은 형태가 온전히 보존되었을 뿐 아니라 마차가 다니던 길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볼루빌리스 유적은 18세기 지진으로 인해 많은 부분이 파손되었으나, 1930년대에 프랑스 고고학자들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으며,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푸른색의 도시, 셰프샤우엔 푸른색의 도시로 알려진 셰프샤우엔(Chefchaouen)은 볼루빌리스에서 자동차로 3시간 이상 북쪽으로 가야 했다. 광활한 평원과 올리브 숲을 뒤로하고 리프(Rif) 산맥을 휘도는 산길로 들어섰다. 차창 밖으로 양 떼를 몰거나 산등성이의 올리브 숲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간혹 보였다. 멀리 산기슭에 자리 잡은 푸른색의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고, 길가에는 우리를 환영하는 건지 호객하는 건지 구별이 잘 안 되는 꽃으로 장식한 밀짚모자를 쓴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셰프샤우엔은 1471년 포르투갈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해 건설된 리프 산맥 아래의 요새 도시다. 아마지그족의 언어인 타마지크어로 '뿔을 보라'는 뜻답게 험준한 산봉우리 안에 숨겨진 도시였다. 이후, 스페인에서 추방 당한 무슬림과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오면서 안달루시아 스타일의 건축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문화를 이루게 되었고, 20세기 들어 여러 가지 이유로 푸른색을 칠하기 시작하여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곳이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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