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 전 같지 않다. 밤늦은 지하철은 한산하고, 출입구 옆 의자에 앉아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있으면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밀려온다. 분명 조금 전까지 즐겁게 웃고 떠들다 왔는데, 결국 의미 없는 말들만 잔뜩 풀어놓고 온 것 같아 씁쓸하다. 모임에 나갈 때만 해도 모처럼 술 한잔 하며 가슴속 눅눅한 얘기라도 좀 털어놓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얼굴을 마주하면 그게 안 된다. 그다지 잘 지내지도 못하면서 "그럭저럭 살 만하다"느니, "애들이 속 안 썩이는 것만 해도 어디냐"느니 하며 끝내 잘 지내는 척 자존심을 세우고 만다. 텅 빈 지하철 안에서 마주하는 이 공허함은, 결국 채우지 못한 속내 대신 껍데기 뿐인 소음으로만 무대를 가득 채우고 온 연주자의 열패감과 닮았다. '뮤트'와 '브러시'가 간절한 인생 후반전 사실 우리 아재들에게 침묵은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가만히 있으면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잊힐 것 같고, 내 존재를 소리 내어 드러내지 못하면 뒤처질 것 같은 조바심. 그 불안함이 결국 제어되지 않은 '생소리'가 되어 터져 나온다. 듣는 이의 마음 구석에 닿지도 못하고, 요란하게 허공을 맴도는 그 고음의 트럼펫 소리는, 실은 "나 아직 잘 살고 있어"라며 자신을 속이느라 내지르는 서글픈 독주일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재즈 피아노 연주자였던 삼촌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재즈 공연을 본 적이 있다. 그날의 음악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생생히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트럼펫 연주자가 갑자기 악기 앞에 웬 양은 사발 같은 걸 턱 하니 갖다 대더니 '와와와와' 하는 코 먹은 소리를 내다가 그다음 곡에서는 변기 뚫는 '뚫어뻥' 같은 고무컵을 대고 먹먹한 소리를 내기에 저게 뭔가 싶기도, 우습기도 했다. 또 드럼이란 스틱으로 신나게 두드리는 것이었는데, 웬 페인트 붓 같은 것으로 슬슬 문지르기에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북을 치다 말고 왜 먼지를 터나 하고. 알고 보니 그게 소리를 '죽이기' 위한 약음기, 즉 '뮤트(Mute)'였다. 뮤트를 끼우면 트럼펫 특유의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소리는 사라진다. 대신 콧소리 같기도 하고, 은밀한 속삭임 같기도 한 맹맹한 소리가 난다. 특히 드럼의 브러시는 북 표면을 살살 문질러 연주의 팽팽한 기세를 달래고 어루만진다. 스틱으로 두드려 상대의 귀에 내 의견을 박으려는 '강요'가 아니라, 사르락 눈 밟는 소리 같은 부드러움은 상대의 거친 숨소리까지 내 리듬 안으로 끌어들이는 '포용'이라고 할 수 있다. 소리는 분명 작아졌는데, 그 속에 응축된 긴장감은 몇 배로 증폭된다. 거창한 선언 대신 조용히 읊조리는 고백에 귀를 더 기울이게 되는 이치다. 인생의 후반전을 연주하는 아재들도 이제 뚫어뻥, 아니, '뮤트'와 '브러시'가 절실하다. 특히 가장 가까운 무대인 '가정'이나 '오랜 우정' 사이에서 우리는 늘 뮤트 없는 생소리를 지른다. 외로운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 더 큰 소리로 허풍을 떨거나, 아내의 고단함 앞에 "당신만 힘드냐"며 모진 소리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내가 소리를 높일수록 하모니는 깨지고, 나는 결국 지하철 기둥에 머리를 기댄 외로운 독주자가 될 뿐이다. 그리 살아왔으니 하루아침에 되겠는가마는, 한 번 해보자. 잘 지내는 척 목소리를 높이고 싶은 욕구 위에 일단 뮤트를 꾹 눌러 끼우자. 입술이 달싹거리고 "그게 아니고~"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 트럼펫 연주자가 복근에 힘을 주듯 배에 꽉 힘을 주며 그 소리를 눌러보자. 그리고 내 주장을 내세우기 전에 브러시로 상대의 날 선 기운을 살살 문질러보는 거다. 내 소리를 죽이고 상대를 어루만지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그동안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아내의 깊은 한숨 뒤에 숨은 고단함, 자식의 침묵 속에 담긴 간절한 인정, 그리고 모임에서 유난히 목청 높이던 친구의 허풍 뒤에 숨겨진 나와 같은 외로움까지. 사실 뮤트를 끼고 연주하는 것은 그냥 부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 소리를 억지로 누르면서도 음정은 정확히 유지해야 하기에, 연주자의 복근에는 땀이 밸 정도의 힘이 들어간다.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자존심을 세우고 싶은 본능을 억누르는 침묵도 내공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얻어진 침묵에는 품격이 담긴다. "나 잘 살고 있다"는 백 마디 생소리보다, 친구의 어깨를 툭 치며 "요즘 힘든 일 없어?"라고 던지는 그 '뮤트 된 한마디'야말로 진짜 아재다운 카리스마 아닐까. 진정한 고수는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밀도'로 말한다. 낡은 트럼펫에 밥사발 같은 뮤트를 끼우고, 거친 스틱 대신 부드러운 브러시를 들자. 화려한 고음이 없어도 사람들이 내 곁을 지키게 만드는 힘, 그것은 목청이 아니라 내가 남겨둔 여백과 상대를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리듬에서 나온다. 내 소리를 죽일 때, 비로소 아름다운 합주가 시작된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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