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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때 들은 경찰의<br> 한 마디...성범죄 피해자<Br> 돕는 '개발자' 된 이유 | Collector 도 펴냈다. "원래 쓰고 싶었던 소설은 이청준 작가처럼 사회 고발 르포 성격의 작품이었다. 소설을 만드는 재주는 없다고 느꼈지만, IT 회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르포집을 낼 수 있었다." - '기술 활동가'라는 정체성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전체 내용보기"> 도 펴냈다. "원래 쓰고 싶었던 소설은 이청준 작가처럼 사회 고발 르포 성격의 작품이었다. 소설을 만드는 재주는 없다고 느꼈지만, IT 회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르포집을 낼 수 있었다." - '기술 활동가'라는 정체성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전체 내용보기"> 도 펴냈다. "원래 쓰고 싶었던 소설은 이청준 작가처럼 사회 고발 르포 성격의 작품이었다. 소설을 만드는 재주는 없다고 느꼈지만, IT 회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르포집을 낼 수 있었다." - '기술 활동가'라는 정체성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전체 내용보기">
20살 때 들은 경찰의<br> 한 마디...성범죄 피해자<Br> 돕는 '개발자' 된 이유
오마이뉴스

20살 때 들은 경찰의
한 마디...성범죄 피해자
돕는 '개발자' 된 이유

내가 운영하는 무의가 지하철교통약자환승지도를 처음 만들었을 때 가장 큰 고민은 그림지도를 어떻게 앱 형태로 바꾸는가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비영리단체로서 어떻게 작업량을 책정할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서비스 프론트 개발과 백엔드 개발까지 책임있게 해 줄 수 있는 개발자를 과연 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 "그렇다면 저희 갱님(닉네임)을 소개해 드릴 게요." 사회적협동조합 빠띠 권오현 대표가 선뜻 소개했다. 개발자로 일하던 분이라고 했다. 그렇게 만난 사람이 도토리랩스 조경숙 대표였다. 그의 개발 작업 덕분에 2026년 초 휠체어의 지하철 환승 정보를 담은 '지하철교통약자환승지도' 웹앱 서비스가 탄생했다. 그는 무의 일 외에도 다양한 비영리단체의 기술 지원 역할을 하는 '기술 활동가'이기도 하며 한국여성의전화 이사로서 성범죄 피해자들을 돕는 '피해자 중심 기술(Survivor-Centered Technology)'이라는 낯선 길을 개척하고 있다. 조 대표를 지난 4일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기술로 사회에 기여하는 '기술 활동가' -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비영리·공공 분야 기술을 지원하는 IT 에이전시 도토리랩스 대표다. 한국여성의전화 이사이기도 하다. SI(시스템통합) 업체에서 6년 동안 개발자로 일했는데, 육아휴직자라 권고사직을 당했던 사태를 겪으며 1인 시위까지 했다. 다른 동료들은 복직했지만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이후 다른 개발 회사를 거쳐 빠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등을 거쳐 도토리랩스를 설립했다. 대기업부터 NGO까지 폭넓은 경험을 쌓은 셈이다." -활동가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있나. "대학생 때 교제 폭력과 스토킹 피해를 입었다. 학교에 도움을 청할 창구를 찾다가 총여학생회를 알게 됐다. 졸업 후 친구들은 활동가의 길을 갔지만 나는 기업에 취직했다. 그러다 친구들을 도와주게 됐다. 서버가 터지면 봐주고, DB도 봐주고, 프론트엔드부터 백엔드까지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줬다. SI업체 전략 부서에서 일했기 때문에 시스템 전반을 알아야 했는데, IT시스템의 A부터 Z까지 아는 광범위한 지식이 지금은 자산이자 전문성이 됐다." -대기업에 다니면서 활동가들과 함께 일했을 때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여성주의 블로그 서비스를 운영하던 '언니네트워크'에서 서버 유지 예산이 부족해 DB를 이관해야 할 일이 있었다. 사실 돈도 안 되고 유지보수 할 것도 없으니 데이터를 날리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런데 활동가들은 '우리를 신뢰해서 이 콘텐츠들을 쌓아 놓은 것이니, 처음 시작하던 마음으로 끝까지 책임지고 싶다. 서비스를 닫더라도 열람할 수 있도록 유지하고 싶다'고 했다. 민간기업에서 데이터 유지를 주로 비용 측면에서 보고 있었던지라 이런 관점은 충격이었다. 작은 NGO나 스타트업의 책임감을 그때 배웠다." - 국문과 출신의 개발자이자 작가, 활동가다. 어쩌다가 개발자를 하게 된 건지? "원래 꿈은 소설가였다. 게임 '바람의 나라'에 7~8년 빠져 있었고, 길드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내가 쓴 글을 홈페이지에 올리고 싶어서 중학교 때부터 개발을 배웠는데, 정작 국문과를 졸업해 보니 개발이 더 재미있었다. 만화나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다들 개발을 조금씩 알던 분위기였다. SI기업에서 퇴직한 후 게임 회사 최종 면접까지 갔는데, 실무진 면접에서 '48시간 연속 근무가 가능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임원 면접에서는 기혼이고 자녀가 있는 여성에게 '왜 일을 하려 하느냐'는 부적절한 질문이 나왔다. 임원과 "시대가 어느 땐데 그런 질문을 하느냐"며 논쟁했고, 최종 합격했지만 입사를 거부했다." -기업에서 일했던 경험으로 르포집 <액세스가 거부되었습니다>도 펴냈다. "원래 쓰고 싶었던 소설은 이청준 작가처럼 사회 고발 르포 성격의 작품이었다. 소설을 만드는 재주는 없다고 느꼈지만, IT 회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르포집을 낼 수 있었다." - '기술 활동가'라는 정체성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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