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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을 포기하고 얻은 것, 멈춤이라는 용기 | Collector
천왕봉을 포기하고 얻은 것, 멈춤이라는 용기
오마이뉴스

천왕봉을 포기하고 얻은 것, 멈춤이라는 용기

새벽 1시, 지리산 연하천대피소에서 눈을 떴다. 산행 첫째 날부터 통증이 찾아왔다. 무릎은 욱신거렸고 허리는 뻣뻣했다. 담요도 없는 잠자리에서 높고 깊은 산속의 한기가 몸속까지 스며들어 다시 쉽게 잠들지 못했다. 휴대전화에서 날씨 예보를 다시 확인했다. 둘째 날은 구름이 더 많아질 뿐이었다. 하지만 천왕봉에 올라 백무동으로 하산할 셋째 날에 비 오는 시간은 새벽으로 앞당겨졌고 확률마저 높아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얇은 비옷을 비집고 들어올 빗물, 물기를 머금어 미끄러워질 하산길, 통증이 더해질 무릎에다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 체력까지 경고는 분명했다. 가야 할까? 여기서 멈춰야 할까? 남은 생에 마지막일지 모를 지리산 종주 산행 이번 산행은 오래전부터 마음에 둔 일이었다. 더 늙기 전에 하고 싶은 목록 상단에 있는 지리산 종주다. 성삼재에서 시작해 천왕봉에 올랐다가 백무동으로 내려오는 2박 3일의 여정이다. 가볍게 떠났을 젊은 날과 달리 이제 노년의 길에 들어선 지금은 단순한 산행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 남은 생에 지리산 능선을 따라 온전히 걸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절박했다. 전날 저녁에 미리 꾸려놓은 배낭은 아침엔 더 묵직했다. 지난 10일 이른 새벽 기차로 출발해 남원에 내려 다시 택시로 성삼재 휴게소에 닿았다. 일요일인 데다 지난 1일부터 산불 통제기간이 끝나 아침인데도 등산객으로 붐볐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고지대 특유의 서늘한 공기는 청량감을 더했다. 등산화 끈을 고쳐 묶고 배낭끈을 어깨에 맞춘 뒤 허리끈도 더 조였다. 함께 온 동료는 내 배낭보다 더 무거운데도 별다른 내색이 없었다. 그는 산행 내내 앞서기보다 내 걸음에 보폭을 맞춰주었다. 사실 그가 없었다면 이번 산행을 결행하지 못했다. 노고단까지는 익숙한 길인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올 때마다 계절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여주던 풍경도 길가에서 자라는 식물도 반갑고 새롭게 보였다. 좋은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찬 기운에 입었던 바람막이 점퍼를 벗고 발가락에 느껴지는 이물질을 빼려고 양말을 고쳐 신은 것 말고는 노고단휴게소까지 가뿐하게 올라왔다. 휴게소에 도착해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에게 산행 일정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이곳을 잘 아는 이의 조언을 듣고 싶었다. 내 체력과 최근 산행 경험을 묻더니, 그렇지 않아도 37km로 짧지 않으므로 중간에 반야봉에 들르는 건 무리라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마지막 날, 12일엔 비 예보가 있어요. 그 점을 꼭 유념해야 합니다." 출발하기 하루 전 알아본 예보로는 늦은 오후에 비가 시작되었다. 그전에 산행을 마칠 것이라 예상했다. 강수량과 확률도 낮아 크게 염려되지 않을 비였다. 무엇보다 구름 한 점 없는 지금의 하늘과 운에 기대고 싶었다. 보랏빛 꽃과 재회, 그리고 찾아온 산의 경고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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