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몇 년 전 작은 고등학교에 근무하던 시절이다. 교실에는 이주배경 가정, 한부모 가정, 조손 가정의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각자의 사연은 달랐지만, 어깨 위 무게는 비슷했다. 어떤 날은 유난히 예민했고, 어떤 날은 이유조차 설명하지 못한 채 깊은 무기력 속으로 가라앉았다. 말없이 지각과 결석을 반복하는 날도 이어졌다. 아이들의 그 흐트러짐이 개인의 태만이라기보다, 위태로운 삶의 조건이 만들어낸 구조적 흔들림이라는 것을 자주 직감했다. 정민(가명)이라는 아이가 그랬다. 동남아 쪽에서 이주해 오신 어머니가 어느 날 생활비를 들고 집을 떠났다. 기울어진 집안 사정처럼 정민의 일상도 곧바로 흔들렸다. 지각과 결석, 벌점이 쌓였다. 생활교육위원회에 선 날, 정민은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뜻밖의 말을 했다. "앞으로 노력해볼게요. 징계도 다 받을게요. 그런데... 저 졸업은 꼭 시켜주세요. 고등학교 졸업장이라도 있어야 나중에 취직해서 먹고살 수 있잖아요." 새로운 다짐이었을까, 너무 일찍 익힌 생존의 언어였을까. 며칠은 수업 태도가 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오래가진 못했다. 다시 지각을 했고, 책상에 엎드려 있는 날이 많아졌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모둠을 나눌 때마다 아이들은 정민이를 피했다. 말로 직접 내뱉지는 않았지만, 교실에는 이런 속삭임이 돌았다. '우리 모둠 점수 떨어지면 어떡해.' '분위기 망가지면 큰일이야.' '저 친구만 봐주는 건 불공정하지 않아?' 눈빛은 이미 결론을 향해 있었다. 그때는 각박한 경쟁이 낳은 이기심이라 여겼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다수의 평범한 아이들만 탓할 수는 없다. 내신은 수행평가·모둠평가가 개인 점수에 반영되고, 1~2점 차이로 등급이 갈린다. 그 한 장의 등급표가 대학의 간판을 바꿔 놓는다. 이런 잣대 앞에서 남의 사정을 봐주다 내 점수가 깎이는 일은 아이들에게 실존적 위협처럼 느껴진다. 부모의 재력도, 든든한 배경도 없는 아이들은 오직 성적표 하나에 매달려 버틴다. 그런 현실에서 약자를 향한 배려를 오로지 개인의 희생으로만 요구하는 일은, 어른들이 책임을 구조가 아닌 개인에게 떠넘기는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 학교의 수행평가 비중은 과목마다 달랐고, 팀 과제의 기여도가 개인 점수에 반영됐다. 모둠원의 역할분담과 협력적 문제해결은 루브릭 항목(평가 기준)에 바로 영향을 줬기에, 아이들은 정민이와 한 조가 되는 일 자체를 위험으로 계산했다. 한국의 교실은 내신이라는 좁은 문을 두고 경쟁하는 결핍의 공간이다. 여유가 사라진 곳에서 이타심은 쉽게 사치가 된다. 정민이를 향한 '선 긋기'는 단순한 악의라기보다, 작은 손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벼랑 끝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슬픈 방어기제였다. 보건실이라는 '특혜', 밀려난 아이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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