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거창은 참으로 품이 넓은 곳입니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시야가 탁 트이는 풍경이 가득합니다. 특히 마음이 헛헛하거나 홀로 사색이 필요할 때면 저는 어김없이 감악산 '별바람언덕'을 찾곤 합니다. 이곳과의 첫 인연은 남편의 손에 이끌려 왔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눈부시게 하얀 샤스타데이지가 언덕을 수놓았던 그 풍경이 시작이었지요. 두 번째는 지난해 이맘때였습니다. 출산한 딸아이의 산후바라지를 위해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텅 빈 집을 지키던 저는 반려견 '무우'와 함께 이곳을 다시 찾았습니다. 남들은 꽃 축제를 찾아 멀리 떠나던 주말이었지만, 저는 무우와 이 호젓한 언덕을 오르며 외로움을 달랬습니다. 그날 이후 이곳은 시간이 날 때마다 들르는 저만의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대구에서 차로 1시간 30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나만의 '숨구멍'을 하나 숨겨둔 셈입니다. 여름을 준비하는 초록 언덕 지난 12일에는 특별히 옛 동료들과 이곳을 찾았습니다. 오랜 세월 같은 길을 걸어온 이들이라 굳이 말을 섞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읽어내는 사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차장에 도착하자 '무장애 나눔길'부터 걷기 시작했습니다. 턱이 없는 데크 길로 조성되어 있어 휠체어나 유모차 이용객은 물론, 누구나 편안하게 걸을 수 있습니다. 데크 좌우로 이름 모를 들꽃들이 고개를 내밀 때면 걸음을 멈추고 스마트폰으로 이름을 찾아 정답게 불러주었습니다. 짙어가는 갈참나무 잎 사이로 함박꽃나무는 꽃망울을 한껏 부풀리고 있었고, 수줍게 고개 숙인 하얀 둥굴레꽃과 붉게 변해가는 병꽃까지 자연의 신비로움에 마음을 뺏기다 보니 어느새 전망대에 닿았습니다. 무장애 나눔길에서 만난 지리산 전망대, 합천호 전망대, 가야산 전망대, 그리고 덕유산 전망대의 풍경은 마치 갓 그려낸 산수화 한 폭이 그대로 펼쳐진 듯 아득하고도 장엄했습니다. 특히 가야산 전망대에서 마주한 맹자의 말씀은 그 풍경과 참 잘 어울렸습니다. "동산에 오르니 노나라가 작음을 알겠고,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음을 알겠다. 그러므로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말하기 어려워하고, 성인의 문하에서 노니는 사람은 말하기를 어려워한다." 거대한 자연 앞에 서니 일상의 소소한 고민들이 참으로 작고 가벼운 것이었음을 새삼 느낍니다. 무장애 나눔길 끝에서 마주한 별바람언덕은 이제 막 초록빛 여름을 입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꽃 잔치는 없었지만, 덕분에 거대한 풍력 발전기가 느릿하게 돌아가는 소리와 야외 설치 작품인 '호흡'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의 돌들을 모아 만든 돌무덤과 예술 작품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고요함 속에서도 깊은 사색의 시간을 선사했습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가히 예술이라는 말로도 부족했습니다. 산맥의 능선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그 위로 운무가 포근히 내려앉은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습니다. 셔터를 연신 눌러보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그 압도적인 거리감과 맑은 공기까지는 사진에 다 담기지 않아 그저 아쉬운 마음 뿐이었습니다. 내려오는 길, 보랏빛 '느린 우체통'이 발길을 붙잡습니다. 1년 뒤의 나에게 "참 잘 살아왔다"고, "이제는 오롯이 너를 위해 마음껏 시간을 쓰라"고 응원의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가을을 기약했습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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