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2024년 6월 24일 월요일 낮 12시 30분경. 그날 저는 평소보다 일찍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들어와 업무를 하기 위해 컴퓨터를 켰습니다.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온 포털의 속보 기사, 기사에는 '아리셀'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고 '폭발'이라는 글자도 적혀 있었습니다. 불과 37초 만에 아리셀은 화마에 완전히 휩싸였다고도 했습니다. 심장은 요동쳤고, 곧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기에서는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는 음성만 반복되었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진 저는 곧바로 화성으로 내달렸습니다. 신호위반과 속도위반을 거듭하며 가까스로 아리셀 현장에 도착하니, 그곳은 그야말로 '지옥'이었습니다. 이리저리 휘어지고 주저앉은 철근 위로 연기가 피어올랐고, 수백 명이 아리셀 건물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인지 알려주는 이는 누구 하나 없었고, 아리셀 정문 앞을 가로막은 선만이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우왕좌왕하고 있을 즈음 휴대전화에 도착한 한 통의 문자메시지, '고 김병철 님 송산장례문화원 안치'. 한 통의 문자메시지, 믿어지지 않는 현실의 시작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 저는 다리에 힘이 풀렸고 벌겋게 달아오른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마침 저 멀리서 아리셀 박순관 대표와 박중언 본부장이 기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에게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유가족들은 충격과 슬픔, 고통을 추스릴 시간도 없이 투쟁에 뛰어들어야만 했습니다. 도대체 사랑하는 나의 아이, 나의 남편, 나의 아내가 왜 죽어야만 했는지 알아야만 했고 책임자들의 진심 어린 사과, 적절한 배·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아리셀 측은 사과를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카메라 앞과 판사 앞에서였을 뿐입니다. 참사 이틀 후부터 유가족들이 모이고 대책위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대책위에는 100여 개 시민·노동·사회단체가 함께했고 본격적인 투쟁이 시작됐습니다. 유가족들은 화성시청 인근 모텔을 근거지로 삼고 투쟁을 이어갔습니다. 고용노동부, 박순관 대표 자택, 에스코넥, 국회 등 아리셀 참사와 관련된 곳이라면 가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2024년 10월부터는 아리셀 본사인 광주시 에스코넥 정문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목이 터져라 울부짖었습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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