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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광주 때문에 각성" 의대 꿈 접은 미국인이 택한 새로운 길 | Coll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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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특집] "광주 때문에 각성" 의대 꿈 접은 미국인이 택한 새로운 길

*1부( [특집] "피가 사방으로" 미공개 광주 인터뷰, 그를 찾아 미네소타로 떠났습니다 https://omn.kr/2i7fo) 에서 이어집니다. [#5 붉은 단풍나무] 록산 원버그 윌슨 (팀 원버그의 누나) "우리는 유해를 뿌리고 붉은 단풍나무를 심었어요." - 그때는 나무가 작았나요? "작았어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아마 33년 정도 됐으니 나무가 훨씬 자랐죠." 미국 미네소타주 브레이너드. 지병을 앓던 팀은 1993년 고향인 이곳에 영면했습니다. 여전히 팀의 재킷을 간직하고 있는 그의 누나 록산을 이곳에서 만났습니다. 록산은 팀이 죽기 직전까지 광주를 이야기했다 고 떠올렸습니다. 록산 원버그 윌슨 "음... 팀은 광주를 결코 잊지 않았어요. 마지막 1년 동안 그는 분명 광주를 이야기했죠. 그에게 한국은 두 가지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하나는 문화와 사람들, 친구들, 자연에 대한 사랑이었고, 또 하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었죠. '광주를 잊지 말라. 이건 끔찍한 일이었다'라고요." 팀의 누나는 그가 광주를 '내가 사는 마을'로 여겼기에 46년 전 5·18민주화운동 당시 망설이지 않고 행동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록산 원버그 윌슨 "광주는 팀에게 일종의 '내 마을' 같은 곳 이었으니까요. '한국은 내가 아끼는 나라고 광주 시민들은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다. 정부가 침묵하라고 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라고 생각했던 거죠. 평화봉사단원은 정치적 입장을 취할 수 없어요. 하지만 팀은 그때 '지금은 침묵할 수 없는 상황이야'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러면서 팀이 광주에 도움을 줬을 뿐만 아니라 광주로 인해 팀도 바뀌었다고 전했습니다. 록산 원버그 윌슨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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