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내게는 날마다 5·18인데, 내가 뭐 하러 거기 참석해." 5·18민주화운동 46주년을 앞두고 정태효 목사가 동생에게 "너도 5.18 기념식에 참석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두 번의 연행과 지워지지 않은 5월의 기억 정 목사의 동생 정아무개씨는 1980년 당시 전남대 경제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그는 5월 18일 길을 가다 계엄군에 두 차례 붙잡혔다. 첫 번째 연행 때는 "나는 시위 참여자가 아니다"라고 강력히 항의하다 폭행당한 끝에 풀려났다. 두 번째 붙잡혔을 때는 이미 계엄군의 대검에 찔려 숨진 여러 시신을 본 뒤라 더 이상 저항하지 못했고 상무대 군 영창에 갇혔다. 부모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소용없었다. 정씨는 5월 27일 무렵에야 겨우 풀려났다. 그는 귀가 도중 만난 시민들로부터 "지금 집에 가면 다시 붙잡힐 수 있으니 도청으로 가 있으라"는 말을 듣고 당시 광주 금남로에 있던 전남도청을 향해 갔다. 하지만 그 무렵 도청은 이미 계엄군 진압 작전 직전의 상황이었다. 정 목사는 "동생이 자세히 말하지 않기에 정확한 경위는 모르지만, 그 혼란 와중에 가까스로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귀가 이후 동생은 이전과 전혀 달라졌다. 몸을 심하게 떨고 헛소리를 중얼대며 정신 이상 증세를 보였다. 총소리와 헬기 소리, 널브러진 시신 등 광주의 참상을 목격한 동생은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해 오랜 세월 정신병원 생활을 해야 했다. 최근 들어 상태가 호전돼 퇴원한 후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취득했지만 망상 증세가 남아 있어 정상적인 직장 생활은 여전히 어려운 상태다. 정 목사 동생의 말처럼 누군가에게 5·18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현재다. 5·18 묘역을 찾은 목회자들 지난 18일, 일하는 예수회(예장민중교회선교연합) 회원 20여 명은 국립5·18민주묘지와 구묘역을 찾아 참배했다. 일하는 예수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PCK) 소속 목회자들 가운데 1960~1970년대 산업 선교 운동의 흐름을 잇던 이들이 1983년부터 공단 지역 노동자 목회를 위한 훈련을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단체다. 당시 민중 목회 훈련에 참여한 목회자들 상당수는 5·18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은 이들이었다. 이 단체 목회자들에게 5.18민주묘역은 삶의 중심추 같은 역할을 한다. 회원들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고 이경로 목사의 묘소였다. 이 목사는 경기도 광주, 하남 지역에 민중교회를 세워 노동자와 주민들을 섬기다가 1995년 교통사고로 별세(향년 38세)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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