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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79] 거액의 전봉준 현상금에 농민들 현혹 | Collector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79] 거액의 전봉준 현상금에 농민들 현혹
오마이뉴스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79] 거액의 전봉준 현상금에 농민들 현혹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일본군은 관군을 앞세우고 집요하게 추격하면서 전봉준에게 거액의 현상금과 군수직을 주겠다고 농민들을 현혹했다. 일본군은 닥치는대로 동학농민군을 학살하였다. 전봉준은 일단 피신하기로 작정했다. 태인에서 농부의 옷차림으로 변복하고 부하 10여 명만 데리고 장성의 입암산성으로 들어갔다. 입암산성의 별장(別將) 이종록은 전봉준을 환대하며 부하들까지 재워주고 밥도 먹여 주었다. 그러나 여기도 안전한 곳은 못되었다. 우선봉장 이규태가 전봉준이 입암산성으로 들어갔다는 첩보를 받고 추격대를 파견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규태는 곳곳에 기찰 요원을 풀어 전봉준 일행의 행방을 뒤쫓았다. 일본군도 입암산성을 샅샅이 뒤지며 수색전을 벌였다. 전봉준은 백양사 옆에 있는 암자로 잠시 피하였다가 순창의 피노리로 발길을 돌렸다. 따르던 부하들을 돌려 보내고 세 명만 데리고 길을 떠났다. 눈에 뜨이기 쉬운 말도 버리고 총 한 자루만 지닌 채였다. 부하들은 양해일·최경선·윤정호였다. 피노리를 택한 것은 예전 부하 김경천이 이 마을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경천은 전봉준이 고부 접주로 있을 때 집사의 일을 보며 전봉준을 도왔던 인물이다. 이곳에서 잠시 피신했다가 김개남과 협력하여 재기를 도모할 작정으로 피노리를 택한 것이다. 이것이 전봉준의 일생일대의 큰 실책이 되었다. 항간에서는 "전봉준이 '경천(敬天)'을 조심해야 한다"는 점괘가 나돌고, 각종 유언(流言)과 참요가 나돌았다. 전봉준은 이런 비어(飛語)를 알았는지 몰랐는지, 경천전투에서 패배하고 피노리를 택한 길이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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