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경주는 신라 천년고도의 도시이자 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그야말로 도시 자체가 야외 박물관이다. 서양인들은 새로운 문화를 찾거나 시대의 문제에 봉착했을 때 문화의 본향인 아테네나 로마를 찾아 실마리를 구한다고 한다. 그렇듯이 우리도 문화의 수도이자 시대 영감의 젖줄이 바로 이곳 경주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1998년부터 경주 세계문화엑스포를 개최하고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호랑이 문화도 마찬가지다. 남한에서 야생 한국호랑이의 마지막 공식 확인 기록이 1921년 경주 대덕산이었다는 점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본격적인 호랑이 탐방에 앞서 '삼국사기' 신라의 기록을 살펴보니 호랑이 관련 기사가 무려 열다섯 건이 넘었다. 삼국시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기도 하고 내용 또한 다채롭다는 점이 주목된다. 물론 대부분은 불길한 징조를 알리는 상서로운 기록들이지만 실제로 맹수의 출몰과 피해 사건도 있었다는 점에서 당시 현실적인 문제도 상당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특이한 경우는 호랑이와 관련된 설화 기록이었다. 바로 '삼국유사' 김현감호(金現感虎) 설화다. 내용은 젊은 화랑 김현이 탑돌이를 하던 중 처녀로 변신한 암호랑이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해치는 오라비들을 둔 호랑이 집안의 딸로 인간을 사랑한 호랑이 처녀는 이 오라비들의 죄업을 씻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죽인 김현이 공을 세워 출세하도록 스스로 김현의 칼에 목숨을 내어준다. 그야말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희생인 것이다. 슬프고도 신기한 호랑이 설화가 전해오는 도시, 호랑이 유물들이 풍부한 호랑이 나라를 찾아 지난 5월 10일 경주를 찾았다. 김현의 감호설화 출발점 경주 도착 후 처음 찾은 곳은 바로 황성공원에 있는 호원사지였다. 김현의 감호설화의 출발점이자 호랑이의 소원을 기린 절. 이 설화야말로 신라인들이 호랑이를 어떤 눈으로 바라봤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증언이기도 하다. 호랑이는 단순히 두려운 맹수가 아니라 인간과 교감하고 희생을 선택할 수 있는 영혼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잘 조성된 황성공원 안에서 안내판 하나 변변치 않은 사지를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최근 발굴했는지 추정된 장소는 정비된 모습이었지만 이렇다 할 안내판이 없어 답답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송화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김유신 장군묘였다. 삼한일통으로 신라 태대각간이 되었고 왕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순충장렬흥무대왕으로 추존된 인물. 그에 걸맞게 잘 조성된 봉분 주위로 웅장한 호석(護石) 장식을 두르고 있었다. 능 주위를 감싸는 열두 개의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은 짐승의 머리에 무기를 든 형식이나 평복을 걸치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그중 호랑이, 인신상(寅神)을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비록 표면은 풍화로 많이 상했지만 힘차게 곤두선 귀와 부리부리한 눈매가 살아있었다. 그리고 손에 쥔 무기는 무엇일까. 위는 둥근 곤봉처럼 생겼고 밑에는 털 뭉치 같은 장식이 있는데, 어떻게 사용한 걸까. 다음 탐방 여정을 위해 국립경주박물관으로 향했다. 이곳을 찾은 목적은 호랑이 유물을 찾기 위해서였다. 전시관 구석구석을 누비며 호랑이를 찾았다. 호랑이 모양 허리띠 장식인 호형대구, 무덤 속에 매장되었던 호랑이 토우나 십이지신 호랑이상 등.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흔적조차 보이질 않았다. 다 어디로 간 걸까. 수장고에 있나, 다른 박물관으로 이관된 걸까.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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