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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84] 동학혁명시기의 참요와 판소리 | Collector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84] 동학혁명시기의 참요와 판소리
오마이뉴스

[횃불·촛불·응원봉, 동학농민혁명 84] 동학혁명시기의 참요와 판소리

국난기나 혁명기 또는 역성혁명 때이면 어김없이 각종 민요와 참요, 그리고 판소리 등 '민중의 소리'가 나타난다. 대부분 노랫가사의 형태를 띠고, 그 가사와 의미에는 각별한 뜻이 담긴다. 명확한 작사자, 작곡자도 없이 민중의 입을 통해 불려지고 전파되는 이들 민요, 참요, 판소리는 시대상황 등의 이유로 파자나 위서의 형태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가사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뜻이 들어있는가 하면 비유나 은어, 은유 등을 섞어 당대 지배세력의 감시와 탄압을 피하고자 하였다. 반봉건, 반외세를 표방하며 봉기한 한국사상 최초의 민족운동인 동학농민혁명은 비록 좌절되었지만 민중의식을 일깨우는 데는 크게 기여하였다. 1894년부터 1년 동안 전개된 동학 농민혁명은 관군과 일본군 연합군의 공격으로 30~40만 명의 희생자를 낸 채 끝나고 말았다. 대외적으로는 청·일 양군의 출병을 유발하여 청·일 전쟁의 직접적인 계기를 만들고, 대내적으로는 갑오경쟁을 불러왔다. 비록 혁명군 지도자는 붙잡혀서 참수되었지만 하부구조는 상당수가 뒤이어 일어난 의병운동에 참여하여 반외세·민족해방 운동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동학농민혁명 전개과정에서 민중사이에는 여러 가지 민요가 불려졌다. 혁명기에는 으레껏 따르는 각종 참요도 나타났다. 당시 지배세력은 민중이 혁명에 가담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봉건지배 체제에서도 민중은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그래서 자연발생적인 민요가 불려지고, 이들 민요는 참요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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