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ctor
부산의 '절망의 죽음'... 결코 자연스러운 일 아니다 | Collector
부산의 '절망의 죽음'... 결코 자연스러운 일 아니다
오마이뉴스

부산의 '절망의 죽음'... 결코 자연스러운 일 아니다

영도대교, 흰여울문화마을, 해맞이동네. 부산의 이름난 관광지들이 모여 있는, 최근에는 도시재생 사업으로도 이름난 영도에는 오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비탈을 따라 형성된 마을을 따라 올라가면 그 꼭대기에는 봉래산이 자리한다. 그리고 그곳에 산신 할매가 살아, 영도 사람들을 굽어살핀다는 전설. 봉래산 산신 할매가 영도를 너무 아낀 나머지 영도를 떠나 뭍으로 나가는 사람은 3년 안에 망하게 만들어 다시 영도로 돌아오게끔 심술을 부린다는 이야기가 이 전설의 완성이다. 한국 근대식 조선업의 발상지인 영도는 꽤 오랫동안 조선업과 선박 수리 산업, 원양 어업, 그리고 항만 물류 산업이 번창했다. 요식업과 서비스업이 함께 번성하는 것 역시 당연지사였다. 그러나 1990년대 조선 경기 불황으로 수리조선업이 영세화되고, 2000년대 한일 어업협정의 영향으로 원양어업이 감소하면서 영도의 급격한 쇠락이 시작됐다. 20년 전만 해도 여전히 "쇠와 땀 냄새" 그리고 "깡깡" 소리로 가득했다던 그곳은 지금 일할 공간을 내어주지 못해 빈집, 빈 창고와 폐공장만이 남아 있다. 부산에서 소멸 위험도가 가장 높다는 영도. 봉래산신 할매도 어느새 지쳤는지, 이제 그곳에는 드는 이 없고 나가는 이를 붙잡을 수도 없다. 영도 주민들의 삶은 오랜 기간 조선업을 중심으로 짜여 왔다. 산업이 쇠락하면서 주민들의 생활 구도가 무너졌고, 이는 영도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됐다. 그 결과는 살고 죽는 문제로 이어진다. 30년 사이 인구 절반이 감소한 영도구는 전국에서도 사망률이 높고, 기대수명은 짧은 곳 중 하나다. 사망률 감소 속도는 더디고, 기대수명은 정체 중이다. 부산 원도심의 흥망성쇠 영도구의 상황은 산업 쇠락과 함께 부산 근대화의 상징인 '원도심'의 쇠락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부산 원도심은 영도구, 중구, 동구, 그리고 서구를 포함한다. 서구의 아미·충무 생활권은 영도구와 함께 사망률 감소 속도가 더뎌지고 기대수명이 낮아지고 있다. 부산 원도심은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전형적인 식민지 도시였다. 무역이 용이한 곳에 항구가 만들어지고, 이곳으로 일본인들이 이주하면서 근대 시설이 집중됐다. 곧 원도심은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가 됐지만, 동시에 서구 고지대 일대에는 조선 빈민층이 주거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 무역과 상업의 요충지에는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성매매 집결지도 만들어졌다. 시간이 흘러 한국전쟁 중 임시수도 기능을 하면서 서구는 정치·행정의 중심지로 변모했지만, 동시에 피란민들이 모인 '피란도시'이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부산항 중심의 공업화가 시작되면서 인근에 일자리를 잡은 노동 인구가 함께 증가하기 시작했다. 서구는 이후 산업화 시대에도 부산과 다른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노동자들의 거주지 역할을 해왔다. 냉동창고, 조선업, 원양어업, 공동어시장, 국제시장 등 일자리를 구하기 쉽고, 출퇴근이 쉬운 데다가 집값도 저렴했기 때문이다. 전체 내용보기

Go to News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