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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밸브를 쥐고 있나... 이래서 전쟁으로 이어졌다
오마이뉴스

누가 밸브를 쥐고 있나... 이래서 전쟁으로 이어졌다

지난 2월 말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가 사망했을 때만 해도 전쟁이 금방 끝날 줄 알았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가 생포됐을 때처럼 48시간 안에, 길어도 일주일 안에는 종료될 줄 알았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어느덧 3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다. 전쟁이 이렇게 장기간 이어질 줄도 몰랐지만, 그 여파가 이렇게 커질지 몰랐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막으면서 중동에서 원유를 나르던 선박들도 발이 묶였다. 전 세계, 특히 중동의 원유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일본은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내가 거주하는 도쿄에서는 당장 5월 말부터 과자 봉지도 흑백으로 나올 예정이다. 나프타 부족 때문이다. 컬러 잉크 만드는 데 원유(제품)가 들어간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됐다. 과자 봉지뿐 아니라 식품을 담는 플라스틱 용기 생산도 어려워질 거라고 한다. 공급망 봉쇄-경제 갈등-전쟁은 인류 역사에서 익숙한 레퍼토리이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만든 질서 때문에 수십 년간 잊고 살았을 뿐이다. 역사는 봉쇄와 전쟁을 거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곤 했다. 그렇다면, 공급망 봉쇄-경제 갈등-전쟁의 가장 오래된 시작은 무엇일까. 아주 약간의 상상을 더할 수 있다면, 나는 그 유명한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를 꼽겠다. 3000여 년 전, 국제 무역망이 가동하다 역사에서 주로 '트로이 전쟁'이라 부르는 전쟁은, 당시 지중해 세계를 둘러싼 거대 세력의 충돌이었다. 호메로스는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전쟁 원인을 한 여인으로 지목했다. 그리스 도시 연맹과 트로이는 헬레나를 차지하기 위해 갈등했고, 결국 전쟁이 터졌다고 말이다. 그럴 리가 있나 싶다. 이 전쟁은 10년간 지속됐다고 한다. 헬레나가 정말 미인이었다 해도, 무려 10년이나 전쟁을 유지할 만큼 내내 아름답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쟁을 이끌었던 그리스 장군들, 아가멤논이나 아킬레우스 같은 지도자들이 아무리 강력했다고 해도(아니면 단순했다고 해도) 그 정도 명분으로는 10년이나 전쟁을 끌고 갈 수는 없다. 당장 3개월 동안 전쟁으로도 고전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보라. 지지율 하락 때문에 고심하는 중이다. 헬레나라는 미녀는 은유적 존재다. '미녀'로 비유된 건 무엇이었을까. 무역 공급망이다. 당시 지중해 세력들을 군침 흘리게 만든 매력적인 무역로였다. 트로이에서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와 결투하던 때,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목마'를 만들던 때를 청동기 시대라고 부른다. 이때 가장 중요한 생산품은 청동이었다. 그리스, 이집트, 중국, 그리고 한반도까지, 유라시아 대륙 각지의 각 문명은 경쟁적으로 청동기를 만들어냈다. 청동은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원료가 제한적이었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을 섞어서 만드는데, 주석이 문제였다. 구리는 유라시아 어딜 가도 흔했지만, 주석 산지는 매우 드물었다. 특히 그리스가 그랬다. 가장 풍부한 청동기 유산을 남긴 그리스지만, 역설적으로 그들 주변엔 주석 산지가 없었다. 그리스는 청동기를 쓰기 위해서 주석 전량을 수입해야 했다. 마치 반도체 강국인 한국과 일본이 희토류를 전량 수입하는 모습과 똑같다. 청동기 시대 초반 지중해 문명은 대부분 아프가니스탄에서 주석을 캐냈다. 아프가니스탄(산지)에서 출발해 이란고원→미탄니 왕국(중개지)→히타이트(소비자 겸 통로)를 거쳐 그리스(최종 소비 지역)로 도달하는 경로였다. 3000여 년 전, 그렇게 먼 경로에서 재료를 조달했다고? 정말 그랬다. 국제 교역망이 수천 년 전에도 작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불안했다. 지금도 저 경로를 통한 원료 수급이 불안한데, 3000여 년 전 기술력으로는 오죽했으랴. 기술만 문제가 아니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란은 치안이 불안했고, 주석 무역 경로인 미탄니와 히타이트는 경쟁하는 사이였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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