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5월 말, 독일 베를린에 애기똥풀이 지천이다. 길섶에, 가로수 아래, 공원 입구, 건물 벽에 기대어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것이 애기똥풀이다. 산미나리처럼 미친 듯이 번져 생태학자들 속을 썩이지도 않고 퇴화하지도 않으며 늘 그만그만한 부피와 크기로 나타나는 베를린의 상수와 같은 풀이다. 흔하디흔한 길가 풀이지만 '도시 자연'이라 불리며 귀여움을 받는다. "거리에 애기똥풀이 엄청 많이 폈는데 그거 캐다가 정원에 심으면 안 될까요?" 정원일을 도와주는 한국인 유학생 한 명이 며칠 전 이렇게 물었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안 된다고 답했다. 단호한 대답에 놀란 학생에게 왜 안 되는지 다음 주까지 답을 찾아보라고 했다. 내가 설명해 주는 것보다 스스로 깨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가 답을 찾을지는 미지수다. 명민한 학생이지만 베를린에 온 지 5개월밖에 안 되었기 때문이다. 애기똥풀뿐 아니라 주차된 자동차들 사이에서 자라는 치커리나 우단담배풀, 포장석 사이를 빈틈없이 채우는 질경이와 민들레 등을 도시 비오톱이라 부르며 손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가 알 턱이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문일답을 이어가며 천천히 이해시킬 생각이다. 그러다 보니 그게 어느새 내 숙제가 되어버렸다. 같은 날 들려온 '서울 어느 공원 안에 조성해 놓은 정원에서 사람들이 식물을 캐간다'는 소식과 겹치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 소식을 듣고 물론 노여웠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어느 동료의 탄식처럼 '아직 한국이 선진국이 아니어서 그렇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국인들은 정직하다. 유럽에서 흔한 핸드폰 도둑, 자전거 도둑도 없다고 알고 있다. 그러니 한국의 공원이나 정원에서 식물이 사라지는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마트의 채소 한 단을 천연스럽게 그냥 가지고 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원에 심어진 '채소'는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캐가는 듯했다. 짐작하건대 그 행위를 절도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절도가 아니면 무엇일까? 그리고 마트의 채소와 정원에 심은 '채소'는 무엇이 다를까? 공원이나 정원에서 식물을 캐가는 행위와 길가의 애기똥풀을 캐다가 정원에 심자는 제안은 서로 역방향으로 진행되는 듯하지만 사실 그 뿌리는 같다. 우리에겐 아직 산이나 들에서 나물과 쑥을 뜯던 시절의 기억이 유전자처럼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납득할 만한 다른 해석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공원과 정원을 산과 들처럼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하나 보다. 이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자연적 요소로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공원과 정원은 분명 인위적인 공간이다. 그리고 공원의 식물은 스스로 자란 것이 아니라 재배원에서 구매하여 심은 것이다. 그런데 마트의 채소는 상품이지만, 공원의 식물은 상품이 아니라 채취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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