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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삼성 라이온즈<br>... '돈성'을 사랑한 팬들의 각오 | Collector
배고픈 삼성 라이온즈<br>... '돈성'을 사랑한 팬들의 각오
오마이뉴스

배고픈 삼성 라이온즈
... '돈성'을 사랑한 팬들의 각오

"배가 고팠어. 경기 후반이 되면 힘이 없어서 뛸 수가 없었다고." 우용득, 천보성, 권영호, 배대웅.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멤버들이 입을 모아 회상하는 1982년의 가장 강렬한 기억은 '배고픔'이다. 물론 연봉이 적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국가대표 경력을 앞세워 대한민국 1등 대기업 삼성에 'A급' 선수로 스카우트되면서 강남에 아파트를 살 수 있을 만큼의 거액을 받은 이들이었다. 그런데도 힘이 없어 경기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그들은 배가 고팠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저녁 식사로 구단이 제공한 것이 각자 바나나 2개씩이었기 때문이다. 마라톤에 조예가 깊었던 그룹 고위 임원 누군가가 '배가 부르면 오히려 경기력이 저하된다'며 경기 전 선수들에게 바나나를 먹이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얼마 뒤부터 선수들이 경기장 구석에, 안 보이는 곳에 모여서 몰래 짜장면을 시켜 먹었어. 그러지 않고는 도저히 경기를 뛸 수가 없으니까." (권영호) 삼성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1982년, 한국 야구의 수준보다도 훨씬 낮은 것이 야구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었다. 다른 구단의 모기업 임원은 '한 경기에 공이 왜 여러 개 필요한가' 따져 물었고, 또 다른 이는 경기를 관전한 뒤 '굳이 멀리 치려고 하게 하지 말고, 내야수와 외야수 사이로 적절히 치는 타법을 교육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팀의 간판선수들은 경기에서 팀을 이끌어야 할 사명 외에, 감독과 모기업 임원들 사이를 오가며 무지한 지시를 완충하고 선수단의 애로사항을 청원하는 메신저의 역할도 떠맡아, 때로는 버거운 술자리에서 몸을 혹사시켜야 했다. 문제는 그런 시절에 그런 일들이, 삼성만의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삼성도 예외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세상 모두가, 그리고 자기 자신조차도 '삼성만은 예외'라고 생각했다는 점이 큰 문제였다. 선진 삼성. 첨단 삼성. 1등 삼성. 하지만 그 삼성의 야구팀 라이온즈에는 선진적인 관리도 첨단의 노하우도 없었고, 다만 화려한 경력에 노쇠함이 가려진 선수들이 나름대로 안간힘을 쓰고 있었을 뿐이다. 1등은 애초에 당연한 것이 아니었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보이게 하는 데는 더 많은 힘이 들 수밖에 없었다. 요컨대 실상은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자리에서 허둥대며 싸우고 있었는데도, 사람들은 삼성이 애초부터 훨씬 높은 곳에서 싸우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있을 수 있는 패배조차 뜻밖의 사고처럼 받아들여졌다. 어쩌면 삼성 라이온즈 팬들의 마음속 제일 밑바닥에 쌓여있는 단단한 비애는 바로 그쯤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보다 더 강하다고 여겨지는 팀. 그래서 다른 팀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넘어갈 장면들이, 삼성에게는 늘 설명이 필요한 실패가 되어버리는 갑갑함 말이다. 끊임없이 나타나는 다윗들 앞에서, 거듭 쓰러진 골리앗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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