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박정희의 권력욕은 유명하다. 이승만보다 6년 더 집권했을 뿐 아니라, 국민들의 격렬한 저항을 받으면서도 끝끝내 스스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처럼 집권욕이 강했던 박정희마저 사임을 생각하게 만든 역사적 사건이 있다. 대통령 취임 6개월 만에 일어난 1964년 6·3운동은 47세 된 그가 대통령직 수행에 대한 자신감을 잠시나마 잃는 원인이 됐다. 당시 40세의 재선 국회의원이었던 김대중은 한일협정 반대시위가 격렬했던 그때 상황을 회고하면서 "6월 3일 정오에 학생과 시민 5만여 명이 광화문에 모여 연좌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이들에게 최루탄을 무차별 쏘았고, 최루가스에 가려 대낮에도 해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라고 <김대중 자서전> 제1권에 썼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들은 바로는 시위가 격화되자 박 대통령이 한때 사임까지 고려했는데, 이를 알아챈 미국이 강력하게 제지했다고 한다.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자 주한유엔군사령관이 헬기로 청와대를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청와대 뜰에서 박 대통령에게 동요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박정희의 사임 운운은 상투적인 것이 아니었다. 미국이 상황을 전해 듣고 당장에 달려갔을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다. 한일협정 체결을 발판으로 한미일 삼각동맹을 결성해야 했던 미국은 박정희가 그대로 물러서게 둘 수 없었다. 그래서 새뮤얼 버거 주한미국대사와 해밀턴 하우즈 주한미군사령관이 그를 만류하기 위해 청와대로 날아갔던 것이다. 그때 청와대에서 나눈 대화 내용은 새뮤얼 버거 대사가 그날 밤 10시 30분에 발송한 '주한미국대사관에서 국무부로 보내는 전보'에 수록돼 있다. 한일협정을 반대하는 1964년 상반기 시위는 1960년 4·19혁명 이후의 최대 규모로 전개됐다. 1964년 3월 24일에 서울대·고려대·연세대 학생들이 주도한 시위에는 약 8만 명이 참가했다. 이를 계기로 반대운동이 격화되는 속에서 박정희는 정권 붕괴 가능성까지 의식했다. 이것이 위 전보에도 나타난다. 박정희는 버거 대사에게 "현재 학생들의 목표는 정부를 전복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희와 미국대사를 움츠러들게 만든 6.3 운동 학생들의 최대 목표는 한일협정 무산이었지만, 박정희는 정권 전복을 우려했다. 당시의 사태 전개는 그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가운데서 그가 생각한 것이 '만약의 경우에는 사임할 수 있다'라는 판단이다. 박정희는 반대시위를 진압해야 하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사임할 것이라고 버거 대사에게 밝혔다. "만약 통제할 수 없는 대중들의 반대에 직면한다면 사임할 것"이라는 그의 말이 전보에 적혀 있다. 6·3운동이 박정희를 얼마나 겁먹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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