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현실 세계에서 호랑이의 맞수는 사자라지만 동양에서 호랑이의 진정한 맞수는 용(龍)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용호상박(龍虎相搏)'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용과 호랑이가 서로 맞붙어 싸울 정도로 실력이 막상막하인 두 강자의 대결을 가리킨다. 이는 중국 삼국시대 조조와 마초의 싸움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용과 호랑이의 상징은 그 역사가 더 유구하다. 1987년 중국 하남성 복양 서수파에서 한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놀라운 장면이 보고 되었다. 인골을 중심으로 양쪽에 조개껍질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그 형상이 좌측에는 용이, 우측에는 호랑이를 표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조성 시기가 대략 6400년 전이라고 하니 이미 '좌청룡 우백호'라는 관념이 있었다는 걸 입증하고 있었다. 현실 속의 절대강자 호랑이와 가상으로 만든 영물인 용이 맞서는 셈이니, 이 어찌 멋진 상상력이 아닌가. 이런 관념이 우리에게도 오래전부터 회자되어 다양한 문화유산을 만들었는데, 아주 흥미로운 용호상박의 현장이 충남 금산에 있다고 해서 지난 5월 25일 탐방길을 나섰다. 호랑이 형상의 조각상, 호석 첫 번째 목적지는 금산천내리용호석이었다. 이곳은 금강이 전북 장수 수분리 뜬봉샘에서 발원하여 금산 적벽의 층암절벽 사이를 뚫고 흐르는 적벽강을 지나 봉황천과 천내강이 만나는 넓은 충적 들판을 휘감아 흐르는 지형으로 바로 제원면 천내리(川內里) 천내들이다. 이곳 금강변 제원대교 가까운 곳에 용 형상의 조각상인 용석(龍石)이, 이곳에서 230미터 더 떨어져 천내들 안쪽에 호랑이 형상의 조각상인 호석(虎石)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조성 내력이 참 재미있다. 고려말 홍건적의 난으로 개경이 함락되자 공민왕은 안동까지 피난길을 떠났고, 그 와중에 풍수지리에 밝은 지관에게 자신의 능묘 자리를 찾도록 명하였다. 이에 지관은 금산 동쪽 20리 지점 태백산 지맥에 '평사낙안부사도강(平沙樂雁浮莎渡江)'의 명당이 있다고 하였으며, 왕은 그곳을 자신의 능소로 낙점하고 석물을 제작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 후 난이 평정되어 개경으로 환도하였고 이를 잊고 방치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는 사연이란다. 하여튼, 본격적으로 용석을 살펴보면 70×80cm의 부정형 받침 위에 높이 138cm로 우뚝 서 있었다. 소용돌이 모양의 과형(過形) 돌기 사이로 꿈틀거리는 몸체가 생동감 있게 조각되었고, 여의주를 움켜쥔 입 양편에는 아가미와 수염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었다. 비록 크기는 아담했지만 그 표정만큼은 강물을 노려볼 정도로 위압적이었다. 용이 물의 신이자 비를 관장하는 존재이니 강변 가까이에 자리 잡은 이유이다. 다음은 호석이다. 높이 140cm의 화강암 호랑이는 110×65cm의 장방형 받침 위에 앞발을 세우고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몸체는 서쪽을 향하고 있으나 고개는 북쪽으로 비틀었다. 산의 정기가 모이는 내륙에 호석을 놓은 것은, 백호는 산줄기의 정기를 등에 업고 들판을 수호해야 한다는 풍수 논리에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눈앞의 호석은 어딘가 무섭지 않았다. 짧고 둥글넓적하게 조각된 귀, 입을 크게 벌려 주위로 생긴 3중 주름, 혀를 날름 내민 표현 등은 으르렁거리기보다 해맑게 웃는 표정에 가까웠다. 또한 발은 어떤가. 위협적이라기보다는 영락없는 앙증맞은 고양이발이었다. 하지만 정말 기막힌 장면은 꼬리의 연출이었다. 엉덩이에서 시작한 꼬리는 몸을 감싼 것도 모자란 듯 급기야 왼쪽 앞발을 감싸고 있는 게 아닌가. 또 꼬리 끝 처리는 어떤가. 한번 더 꼬아 놓은 모습이 사랑스럽지 않은가. 감히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호랑이 꼬리라고 말하고 싶다. 고양이의 '번팅(bunting)'이라는 것이 있다. 친밀감과 애정을 표현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보통 헤드번팅으로 머리를 사람들 다리 사이로 비벼댄다. 그런데 이 호랑이 보소. 스스로 셀프번팅을 하는 게 아닌가. 소위 꼬리번팅이 아닐런지. 이 기상천외한 장면 앞에서 한참을 웃었다. 전체 내용보기
Go to News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