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하이 아틀라스를 넘어 마라케시(Marrakesh)까지 가는 길은 페스에서 미들 아틀라스를 넘어 사하라까지 가는 길보다 훨씬 험하고 멀었다. 하루에 가기는 너무 고단해 우리는 하이 아틀라스산맥의 최고봉인 투브칼(Toubkal)산 기슭의 위르간(Ouirgane) 계곡에서 하루 쉬어가기로 했다. 아이트 벤 하두를 떠나 30분쯤 지났을까. 차에서 잠시 내리자 하얗게 눈 덮인 거대한 산맥이 눈앞에 펼쳐졌다. '저 웅장한 산을 넘어야 마라케시에 닿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천 년 전 당나귀에 의지해 이 험난한 산을 넘었을 옛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자동차가 구불구불한 산악 도로를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다.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포장도로 고개인 '티지 은티치카(Tizi n'Tichka) 패스'였다. 고갯마루에 다다르자, 두 개의 탑 사이에 해발 2260미터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멋들어지게 걸려 있었다. 아틀라스산맥의 광활한 파노라마 뷰가 펼쳐진 가운데 눈 덮인 모습이 찍고 싶어 휴게소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아직 투브칼산은 보이지 않았다. 본래 이 길은 아마지그족 카라반들이 목숨을 걸고 사막의 소금, 금, 대추야자를 마라케시의 시장으로 나르던 좁고 험한 산길이었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된 것은 1936년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군이 남부 사막 지역의 부족들을 통제하고 군대를 빠르게 이동시키기 위해 이 가파른 암벽을 깎아 도로를 개통했다. 그리고 수년 전부터 모로코 정부가 현대화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북아프리카 최고봉, 투브칼산 고갯마루를 넘어선 자동차는 다시 북서쪽을 향해 끝없는 지그재그 모양의 산길을 내려갔다. 한 시간쯤 달렸을까. 길이 평탄해지며 푸른 초원이 나타났고, 그 뒤로 하얀 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졌다. 드디어 투브칼산과 마주한 것이다. 겹겹이 이어진 봉우리 중 우뚝 솟은 둥그런 봉우리가 바로 해발 4167미터의 북아프리카의 최고봉, 투브칼산이었다. 아이트 벤 하두를 떠난 지 6시간 만에 투브칼 국립공원 안에 자리 잡은 위르간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안에서는 투브칼산 정상부가 보이지 않지만, 마을 뒤편의 능선이나 고개로 조금만 올라가면 서부 아틀라스의 전경과 함께 푸른 인공 호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우리는 엄두도 낼 수 없는 해발 4000미터가 넘는 투브칼산 정상 대신, 아마지그족 마을의 진흙 벽을 따라 해발 1000미터 고지의 완만하고 호젓한 산길을 걸었다. 흙길은 철분 성분 때문에 유난히 붉었고, 그보다 더 붉은 빛을 띠는 벽돌담 아래에서는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산길 언덕에 오르니 푸른 호수가 시원하게 시야를 주었고, 호수를 바라보는 산기슭에는 아기자기한 현대식 흙집들이 모여 있었다. 붉은 산자락이 잔잔한 호수 위에 비치는 풍경은, 거칠고 황량한 아틀라스산맥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평화로운 휴양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마을에도 아픈 상처가 있었다. 3년 전인 2023년 9월, 규모 6.8의 강진이 위르간 마을을 강타해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었던 것이다. 지진에 취약한 진흙 벽돌 가옥들은 모래성처럼 주저앉았고, 구조 차량이 지나가야 하는 산악 도로마저 무너져 내려 결국 3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금은 정부와 주민들의 적극적인 복구 노력으로 많은 부분이 제 모습을 찾았지만, 주민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지진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고 했다. 우리가 하룻밤 머물렀던 숙소 역시 지진으로부터 재건된 곳이었다. 이제 모로코 여행은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모로코 최대 관광도시인 마라케시로 가기 전, 모로코 문화를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요리 수업에 참여했다. 모로코를 상징하는 음식인 '타진'을 직접 만들어보는 시간이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나라를 떠나 살아도, 자식 세대와 대화가 통하지 않더라도, 서로를 이어주는 탯줄 같은 매개체가 바로 어릴 적 엄마가 해주던 음식이 아니겠는가. 모로코에서는 타진이 그런 음식일 것이다. 위르간 마을에서 1시간 정도 이동해 올리브 나무숲과 과수원으로 둘러싸인 텃밭 옆 비닐 막사로 들어갔다. 요리를 배우는 팀이 우리만이 아닌 듯 여러 개의 테이블이 준비돼 있었다. 80대 어르신부터 어린 학생까지, 가족 단위 여행객부터 우리 같은 단체팀까지 남녀노소가 한데 모여 앞치마와 머릿수건을 둘렀다. 그리고 요리사의 지시에 따라 준비된 재료를 그릇에 담기 시작했다. 말이 요리 수업이지 흥겨운 요리 예능 프로그램에 가까웠다. 요리사의 지시 사항이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크게 틀어놓은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듯 재료가 담긴 그릇을 들고 준비된 불붙은 화덕으로 향했다. 불을 지피고 화력을 조절하면서 부족한 양념을 채워 넣는 세심한 작업은 베테랑 조리 보조사들의 몫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타진의 맛은 이제껏 먹어본 것 중 최고였다. 이는 그곳에 참석한 모든 이들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수령증까지 손에 쥔 채, 우리는 최종 도착지인 마라케시로 향했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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