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서울에서 부산 기장군까지 410km. 열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다섯 시간 만에 고리 2호기가 있는 월내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아담한 마을 지붕 사이로 바다보다 원자로 돔이 먼저 보였다. 솔직히 무서웠다. 최종 방호벽 역할을 한다는 원자로 돔이 터지고 무너져내리는 후쿠시마 사고의 장면이 자꾸 재생됐다. 마을 사람들은 이 불안과 긴장을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걸까. 작은 집과 어울리지 않는 층 높은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크고 화려한 스포츠센터 앞에는 신규핵발전소 유치를 원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발전소 앞 바다에는 낚시를 하는 사람들, 아이들과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연인들은 핵발전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핵발전소 가까이 갈수록 처음 느꼈던 무서움과 불안이 조금 누그러지는 듯했다. 그러다가도 발전소를 이중으로 둘러싼 철조망과 발전소 바로 앞 소방서, 곳곳에 방사선비상 대피 안내판을 볼 때마다 '핵을 안고 산다'(신혜정,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나>, 호미, 2015)는 말을 실감했다. 수명이 끝난 고리2호기, 재가동했다 시작부터 법을 어겼다.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2호기는 설계수명만료일에 따라 2023년 운영이 중단되었다. 사업자인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이 고리 2호기 계속운전을 하고자 했다면, 원안법(원자력안전법)에 따라 설계수명만료 2년 전인 2021년 4월에 계속운전 안전성평가(PSR)를 원안위(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해야 했다. 한수원은 1년이 지나서야 PSR을 제출했고, 원안위는 2025년 11월 고리 2호기의 계속운전을 최종 허가했다. 수명이 끝난 40년 된 고리 2호기는 지난 4월 4일 다시 가동을 시작했고, 이제 2033년까지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과태료 300만 원을 내고 끝이었다. 환경단체들이 법 위반을 문제 삼았지만, 원안위는 고발 조치만 했을 뿐 계속운전은 허가했다. 한수원이 기한을 넘겨 갑작스레 수명연장을 한 건 2022년 원전 생태계를 회복하겠다는 당시 새로운 대통령의 선언 이후였다. 대통령의 말을 등에 업고 PSR을 제출한 이후 계속운전을 위한 단계들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PSR을 포함한 방사선 환경영향평가와 사고관리계획서를 제출해야 하고, 발전소 30km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공청회를 열어야 한다. 한수원이 공청회를 위해 작성한 방사선 환경영향평가서는 5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전문용어 투성이었다. 열람율은 0.02%에 그쳤다. 그럼에도 공청회가 열렸다. 환경단체가 단상을 점거하는 등 강력하게 시위하며 공청회마다 문제를 제기했지만, 공청회에 참석해 마이크를 쥔 주민들은 수명연장에 찬성했고, 한수원은 주민공청회를 그렇게 '그냥 통과'시켜버렸다. 비민주적인 소통과정과 부실한 절차도 문제지만 심각한 건 한수원이 작성한 사고관리계획서 내용이었다. 사고관리계획서는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만들어졌다. 처음 핵발전소가 생길 때 만들어진 원자력법(2011년 이후 원자력진흥법, 원자력안전법으로 분리)은 중대사고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만들어졌다. 스리마일섬과 체르노빌, 후쿠시마까지 중대사고를 세 번이나 겪은 뒤에 사고관리계획서 제출을 법제화했다. 한수원은 개정된 원안법에 따라 방사선환경영향에 대해 최신 기술기준을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한수원은 최신기술기준(NUREG-1555)이 아니라 1979년에 만들어진 기준(NUREG-0555)을 적용했다. NUREG-0555는 중대사고에 대한 평가가 포함되지 않는다. 환경단체들이 이를 지적하며 사고관리계획서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한수원은 이를 거부하며 '회사의 기술적 자산'이라고 주장했다. 사고 날 리가 없다는 전제와 믿음은 안전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무력화시키고 지켜야 할 것들을 누락시킨다. 그렇게 '10만 년에 한 번 난다던' 핵발전소 사고가 50년 동안 세 번이나 났다. 한수원을 보면 부산환경운동연합 박상현 사무처장은 한숨만 난다. "설비 개선 비용이 너무 낮아요. 증기 발생기같은 핵심 설비를 개선해야 되는데 그런 게 없어요. 한수원이 제출한 사고관리라는 게 핵발전소가 안전하게 가동되도록 설비를 갖추는 게 아니라, 문제가 생기면 사람이 가서 작동을 멈추면 된다, 그러면 사고가 안 난다, 이런 식이에요." 한수원이 고리 2호기 수명연장 안전설비에 책정한 예산은 3000억 원 이다. 그중 1300억 원은 주민지원금으로 실제 안전설비 비용은 1700억 원이다. 일본이 사고 대책으로 핵발전기 1기당 약 2조 원을 들여 개보수한 것에 견주어보면, '안전하다'는 한수원의 주장이 우습게만 느껴진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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