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1923년 히틀러는 ‘뮌헨 폭동’에 실패해 란츠베르크 교도소에 수감됐다. 말이 교도소지 5년형에 실제로는 1년 남짓 복역했다. 그는 강이 내려다보이는 호텔 같은 독방에서 비서까지 부리면서 살았다. 자서전이자 정치선전서인 ‘나의 투쟁’이 이곳에서 나왔다. 이후 히틀러의 인기는 치솟았다. 1930년 나치당은 독일 제2당이 됐다. 히틀러는 어떤 논리로 사람들을 유혹했을까? 세계의 모든 문제는 유대인이 일으켰다는 황당한 논리도 있지만, ‘나의 투쟁’은 아주 평범한 논리로 유혹을 시작한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국회의원은 제멋대로 법을 만들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 국가가 생존하려면 일정 크기의 영토와 인구를 가져야 한다, 대중은 천재의 독창적 행동에 늘 반대한다, 국가는 훌륭한 문화를 국민에게 보급할 의무가 있다…. 이런 말을 하거나 공감한다고 해서 파시스트인 것은 아니고, 파시스트가 된다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세계 경제가 불황에 빠지고, 국가와 국가, 강자와 약자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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