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육퇴(육아 퇴근) 후 방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데, 첫째 손주 녀석이 다급하게 문을 열어 젖혔다. 서툰 발음으로 당장 거실로 나와 보라는 둥둥이(태명)의 성화에 무슨 큰일이라도 났나 싶어 황급히 나갔다. 막상 나와 보니 거실에는 특별히 이렇다 할 만한 일이 없었다. 그저 이제 막 말문이 트이기 시작한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보이지 않는 주먹 마이크를 쥐고, 서투른 발음으로 "지금부터 아기가 음... 말한다아." 하며 온 가족을 불러 모은 것이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아이가 무심코 던진 장난의 씨앗을 멋진 놀이로 키워보고 싶었다. 나는 얼른 아이의 장단에 맞추며 나섰다. "그럼 할머니가 먼저 하겠습니다!" 주먹을 꽉 쥐어 야무진 '주먹 마이크'를 만들어 들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둥둥이 할머니 홍반장입니다." 내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날카로운 지적(?)이 치고 들어왔다. "할머니, 이렇게 하세요." 둥둥이는 두 손을 배꼽 위에 가지런히 모으더니,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의 정석을 선보였다. 마치 미리 기획된 방송 프로그램의 엄격한 연출자 같았다. "예, 알겠습니다!" 나 역시 방송 사고를 내지 않으려는 초보 리포터처럼, 얼른 배꼽 손을 하고 90도로 허리를 숙여 다시 정중하게 소개를 마쳤다. 그제야 둥둥이는 고개를 엄숙하게 끄덕이며 통과라는 듯 '오케이 사인'을 보내주었다. "오늘은 바쁜 하루였습니다. OO마트에서 장도 보고 양파장아찌도 담았습니다. 함께해 준 할아버지가 무척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 둥둥이가 할머니와 즐겁게 목욕을 잘 해주어서 참 감사합니다. 이상 끝입니다." 시작할 때처럼 90도 인사를 올린 뒤, "다음은 둥둥이 차례입니다!" 하며 아이와 힘차게 하이파이브로 바통을 터치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둥둥이가 주먹 마이크를 들고 당당하게 무대 중앙으로 나섰다. 전체 내용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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